조원강 시집 - 첫 번째 ,
아직 당신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않습니다
이름을 부르기 전 몇 번이고 펜으로 눌러씁니다
당신의 이름 철자의 처음과 끝은
어째 우리 사이의 거리 같아서
부르는 것보다 쓰는 게 빠릅니다
보고 싶습니다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가 약속했듯이 만나자마자 꽤 오래 껴안습니다
귓가엔 서로의 모국어로 알아듣지 못할 말을 속삭입니다
우리는 무언으로 약속하고
비자가 필요 없는 제3 국에서
제3의 언어로 다시 태어납니다
입으로 하지 않은 말은 내 말이 아님을 믿습니다
글로 쓴 사랑은 낙서 같아서
쓰고 지워도 흔적은 영원하다고 했지만
내 입은 말로 그 문장 따위를 지우고는 당신의 입을 막아버립니다
우리의 경계를 허문 것은 국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가 느꼈을 도시의 소음과
당신이 느끼는 풀과 바람이 말하는 소리는
내게 맞닿을 수 없기에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든 연결시킵니다
어쩌면 그곳의 풀을 먹고 자란 동물을
나는 익혀 먹었는지도 모릅니다
상식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이 말은
횡설수설이라 무척이나 맘에 듭니다
이 말을 전하려다가
불어의 완전한 단어가 머릿속을 맴돕니다
"VERONIQUE"
그녀가 이렇게 써줘서 유일하게
처음으로 당신을 이름으로 불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