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강 시집 - 첫 번째 ,
나이 서른,
관객 하나 없이
텅 비어버린 무대 중앙에서
어느 시인은 쓰러져 버렸다.
그의 입속에는 검은 잎이 아른거렸고
나는 텅 비어버린 차량 주유구에
검은 기름을 쏟아붓고서
빨간 신호등 앞에 선다
주유소 옆 길쭉한 건물 외벽에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속절없이 나부낀다
퇴근 후,
살아있는 줄 알았던 죽은 시인의 시를
서점 모퉁이에서 쪼그려 앉아
읽어 내려간다.
무슨 말인지 한 번에 알면 그것은 시가 아니겠지.
첫 시집을 펼쳐 보지 못하고 떠난 시인의 약력을 보며
죽어서 시인이 된들 무엇하랴
나는 잠시 그리 생각했다
나는 왜 죽어서라도 시인이 되려는가
시집을 덮고 아주 좁은 공간으로
죽은 이의 시가 나에게 깊은 상념만을 남긴 채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