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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강 Jun 19. 2023

시인은 죽어서...

조원강 시집 - 첫 번째 ,

나이 서른,

관객 하나 없이

텅 비어버린 무대 중앙에서

어느 시인은 쓰러져 버렸다.

그의 입속에는 검은 잎이 아른거렸고

나는 텅 비어버린 차량 주유구에

검은 기름을 쏟아붓고서

빨간 신호등 앞에 선다

주유소 옆 길쭉한 건물 외벽에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속절없이 나부낀다

퇴근 후,

살아있는 줄 알았던 죽은 시인의 시를

서점 모퉁이에서 쪼그려 앉아

읽어 내려간다.

무슨 말인지 한 번에 알면 그것은 시가 아니겠지.

첫 시집을 펼쳐 보지 못하고 떠난 시인의 약력을 보며

죽어서 시인이 된들 무엇하랴 

나는 잠시 그리 생각했다

나는 왜 죽어서라도 시인이 되려는가

시집을 덮고 아주 좁은 공간으로 

죽은 이의 시가 나에게 깊은 상념만을 남긴 채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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