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정만수르쌤 stacie Oct 24. 2023

나는 애당초 나에게 행운 따윈 오지 않는다고 믿었다.

초보원장 상담 편


"전화가 왔습니다."


2021년 봄 언젠가, 업무용 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왔어요.

A: "아이 상담 좀 하고 싶어서요."

Stacie: "네, 어머니. 아이가 영어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A: ~~~~~~~~~~~~~~~~~~

Stacie: blah blah blah

그렇게 한 동안의 상담 대화가 오가고 몇 분 뒤,


A: "근데 선생님은 교포도 아닌데 왜 원어민보다 수업비용을 더 많이 받으세요?"

Stacie: "네?" (당황했지만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원어민 선생님은 수업만 하시고 학부모님이랑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상담은 한국어선생님이 대신하시잖아요. 그 아이에 대해 제일 잘 아는 건 아이 앞에서 수업하는 선생님일 텐데 저는 영어로 아이랑 원어민 선생님처럼 수업하고 아이가 잘하는 부분과 보완해야 할 점을 직접 보고 느낀 대로 한국어선생님처럼 학부모님과 소통하니 저는 2명 선생님들의 역할을 하는걸요. 1+1인데 더 가성비 아닌가요."

A: "아, 네."

학부모님은 그렇게 대답하셨지만 진 거 같은 느낌이었요. 나름 잘 대처했다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잘 응대했다고 그렇게 나를 다독였지만, 알 수 없는 자괴감이 몰려왔어요. '내가 왜 나를 이렇게 설명해야 하지? 나는 늘 바쁘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나랑 수업한 아이들은 영어를 잘하고 영어를 좋아하는데. 우리 학부모님들은 모두 만족하셨었는데 나는 왜 풍무동으로 이사를 와서 이런 수모를.. 이란 생각에 자존감이 낮아지는 기분마저 들었어요.' 그렇게 상담전화가 마무리되고 한참을 울었어요. 풍무동에 이사 와서 오픈하고 시드회원 (오픈 전 모집되는 학생을 일컫는 말) 없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나의 오만함이 현실로서 부딪히는 순간이었어요. 풍무동에서는 나를 알지 못하는 학부모님들을 설득하리란 쉽지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나 봐요. 앞으로가 참 많이 걱정되었나 봐요.


얼마가 지났을까요?

"전화가 왔습니다."


B: "아이 영어상담 좀 하고 싶어서요. 맘카페에서 유명하더라고요."

Stacie: "네? 어디요?" (웃음을 감출 수 없었어요. 나는 정말 일희일비하는 사람이에요. 크게 될 수 없는 그릇인가 봐요.)

B: "00 맘카페요. 아, 못 보시는구나. 여기 아파트 주민만 가입가능해서 그러신가 보다."

Stacie: "혹시 괜찮으시면 캡처해서 보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감사하다고 인사 전해드리고 싶어서요."

그렇게 전화 상담이 마무리되고 B 학부모님이 카톡으로 캡쳐본을 보내주셨어요.


[카톡캡처본]


맙소사, 얼마 전 나를 울게 했던 그 학부모님이신 거예요. 고민했어요. 정말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하는지.

어떻게 알았냐고요? 프로필 사진이 같았거든요. 절대 모를 수 없게 똑같았어요. 그냥 누가 봐도 그분이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타이밍을 놓쳤다는 좋은 핑계를 대볼게요.


며칠 뒤,

"전화가 왔습니다."


C: "아이 영어상담 좀 하고 싶어서요. 맘카페에서 유명하더라고요."

Stacie: "네? 어디요?" (엥? 나 이거 왜 익숙하지?)


이후 문의하신 학부모님들은 저에 대해 카페를 통해 알게 되었다며 캡처페이지를 몇 번 보내주셨는데 추천인이 모두 같은 분인 거예요. 그 뒤로도 그분이 남긴 카페 추천글로 문의전화를 받았고, 추천 댓글도 그분, 그리고 여러 학부모님들께서 그분의 추천으로 상담문의를 남겨주셨어요. 이렇게 여러 번 같은 분의 추천을 받고서야 저의 옹졸했던 마음이 풀렸나 봐요. 그 학부모님께 카톡으로 감사인사를 드리고 커피쿠폰으로 마음을 전해드렸어요. 작지만 성의는 보여드리고 싶었고 그래야 제가 조금은 덜 부끄러울 것 같았어요.


누구나 행운은 찾아온다고 하죠. 저도 그 행운이 언젠가 나에게 올 것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 행운을 잡지 못해 속상한 경험도 있었고, 그 행운이 왜 나에게는 오지 않는지 원망스러웠던 기억도 있었어요. 처음 내 이름을 걸고 하는 브랜드에서만큼은 "내 노력으로 해보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하자."는 마음이 컸던 거 같아요. 그래야 나 자신에게 떳떳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그래야 어떤 요행도 기대하지 않을 수 있다 여겼던 것 같아요. 만약, 제가 그분의 질문이 공격적이라 생각해서 감정적으로 대했다면 저에게 이런 기회들은 오지 않았겠죠? 우리는 가끔 단편적으로 자기 자신의 상황에 빗대어 본인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요. 상대방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자격지심과 상황에 맞춰 나 자신을 그렇게 오해하도록 만드는 거죠. 상황을 오해한 적이 있으신가요? 본인의 상황을 조금 떨어져 객관화해 보면 그리 화날 일도, 그리 속상하거나 슬퍼할 일도 아닐 수 있어요. 그렇게 하루 종일 나를 울게 만들었던 그분이 나에게 귀인일지 누가 알았겠어요? 당신에게도 귀인이 오길 바랄게요.


며칠 뒤,

"전화가 왔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