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lishman in Bali
발리의 즐거움 중 하나는 여전히 어렵지 않게 전통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통 춤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 라인, 정확한 스토리는 이해하지 못해도 가물란 연주의 흥겨운 전통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을 마을 사원이나 공연장에서 쉽게 관람할 수 있다. 물론 내가 보는 관점은 조금 다른데, 내가 알고 있는 친구들이 매일 밤 댄서로 변신해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이 매번 신기하기만 하다.
공연은 보통 마을 사원에서 열리는데, 셀 수 없이 많은 마을 단위로 이루어진 발리의 특성을 고려하면 거의 모든 지역에서,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지역에서는 더욱 이러한 전통 공연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연은 전통이라는 탈을 쓴 마을의 공통 수익 사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연이 열리는 날에는 마을 주민 모두가 하나 되어 관광객들을 상대로 티켓을 판다. 원하면 오토바이를 이용해 공연장까지 무료 드롭도 해준다. 마을 단위로 경쟁도 치열해진다. 물론 요일마다, 날짜를 정해 공연을 개최한다. 이 마을은 월요일, 저 마을은 수요일, 일요일, 토요일, 이런 식으로...
마을의 구성원들은 오전 내내 장사, 농사, 알바 등 각종 업무에 충실하고 저녁에는 공연장의 전문 댄서로도 활동을 해야 한다. 이런 까닭에 로컬 친구들 몇몇을 공연장에서 마주하기도 한다. 전통 공연은 어디든 할 수 있지만 께짝 공연은 조금 다르다. 군무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적어도 50~100명 내외의 남성이 필요하다. 건장한 청년 100명을 모으기란 생각보다 어렵기에 어떤 마을은 여성 무용수를 중심으로 하는 공연 정도만 진행하기도 한다. 다행히 우붓 지역은 현지 인구 비율이 높은 편이라 께짝 댄스가 가능하다. 물론 중간중간 졸기도 하고 타이밍을 못 맞추는 동네 어르신들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공연을 마무리한다. 60분가량 끊임없이 께짝께짝을 외치며 전해진 군무를 해내는 것은 책임감과 의무 감 없이는 분명 불가능한 것이다. 주말에 친구들과 술 한 잔, 여행도 가고 싶을 텐데...
60분의 공연 중 20분을 남겨놓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수십 번 본 공연, 안 봐도 그만이지만 녀석들에게 눈인사로 얼굴 도장을 찍었으니, 서둘러 떠나야 한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로컬 밴드의 라이브 공연이 있는 날이다. 그들의 라이브 공연을 감상하며 빈탕 맥주를 무한정 마셔야 한다.
사원으로 오기 전, 바 직원에게 금일 라이브 공연 시간은 8시부터라는 답을 들었다. 악기 세팅하고 튜닝 좀 하려면 15분, 녀석들 담배 한 개비 태우고 친구들과 포옹 좀 하면 10분, 그러면... 8:30 분이면 시작. 혹시 몰라 자리하나 맡아달라 하고 도착하니 첫 곡이 시작했다. 신나는 라틴, 살사 음악. 최애곡 잉글리시맨 인 뉴욕도 중간에 불렀다. 물론 약간의 개사로 영국인은 뉴욕이 아닌 발리가 되었지만...
중간에 흥이 한껏 오른 할아버지가 오늘의 신트틸러가 되었다. 행복한 수요일, Happy Wednesday.
부에나 티에라 Buena Tierra 밴드도 못 본 사이 나만큼 많이 늙었다.
우붓의 웃고 있는 부처의 술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