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진 1~2년 전 써놓은 내용을 저장만 해뒀길래, 묵혀둬서 뭐하나.. 하고 뒤늦게 올리는 오늘의 글 :)
얼마 전, 인스타 DM을 통해 모 기획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소속 인디밴드의 2기 보컬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유튜브에 올라온 내 영상들을 보고 보컬로서 음색이 잘 맞을 것 같아 오디션을 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어쩐지 이날은 아침부터 본 '오늘의 운세' 중 성공운이 최고로 높더라니.. (토스로 매일 운세를 확인하면 한 3원씩 받는다. 3일 연속으로 받으면 출석체크 보너스로 10원정도 더 받을 수 있다. 푸하하)
오랜만에 받아보는 제안에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한동안 매너리즘에 빠져 음악은 거들떠도 안 봤는데.. 순식간에 유스케 무대에서 집중해서 노래를 부르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비록 밴드의 음악 성향과 내 취향이 맞지 않았지만,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하고싶은 말을 다 못 전할까봐 대본까지 써서 전화를 걸었다. 오디션 제안은 거절했지만 혹시나 다음에라도 내 목소리가 필요할 일이 생긴다면 부디 연락달라는 요청을 덧붙였다.
그랬더니 관계자분께서 '여담이지만, 그럼 ㅇㅇ씨께서 하고싶으신 음악은 어떤 건가요?' 라고 물어오셨다.
주로 밴드로 공연한 영상밖에 안 올리셔서 밴드가 하고싶은 건 줄 알았다는 말씀..
백예린같은 부드러운 노래나 리드미컬한 곡이 하고싶다고 말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나는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
슬프면 슬픈대로, 기쁘고 설레면 또 그런 감정들을.. 내 섬세함이 가장 큰 무기로 작용할 수 있는 그런 곡들을 받아서 부르고 싶다.
음악에 있어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이다.
1. '듣기에 좋아'야 한다.
2. 표현력이 좋아야 한다.
3. 가사가 좋아야 한다.
1번의 경우, 말 그대로 단순히 듣기 좋은 음악을 말한다. 가수의 목소리가 너무 좋거나, 전체 악기 밸런스와 톤이 너무 좋은 그런 음악! 나는 생판 외국 노래들도 자주 듣는데, 예를 들어 라틴팝을 들을 때에는 가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냥.. 듣는다, 그냥. 그럴 때에는 가수나 곡의 내용에 대한 선입견 없이 완전히 수용적인 자세로 음악을 듣게 되는데, 그때 그 음악을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면 정말 순수한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느낌에 푹 빠져있다 나오면 여운이 한참 남는다. 조금 숭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그럴 때 정말 귀르가즘을 느낀다.
그럴 때에는 이 가수가 얼마나 어려운 코드를 치는 스킬이 대단하다거나 하는 것이 딱히 의미 없다.
(최근 그렇게 느낀 곡은 히사이시 조 '인생의 회전목마' 오케스트라 라이브 버전. HONNE의 'Warm on a cold night'도 그런 부류이고, 크러쉬의 '나빠'도 인트로의 간질거리는 소리들을 정말 좋아한다.)
둘째로는 표현력이다! 이는 기술과 감수성이 모두 요구된다. 드라마를 보고 감정이입해 눈물을 흘리듯이
표현력에 가사도 해당된다.
이때 내가 생각하는 좋은 가사란, 꼭 조용하고, 아름답고, 시적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노래'의 '장르' '분위기'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잘 어울리는.. 그런 조화로운 가사를 참 좋아한다.
한때 다니던 녹음실 사장님께서 빌려주신 김이나 작사가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 책에서도 가수들의 발음법, 조음법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신나는 음악은 신나는 대로, 가수가 부르기 쉽게 발음이 쉬운 가사를 위주로 적는다거나, 재치있고 유쾌하다거나, 리듬에 맞게 딱딱 끊어지며 강세를 줘야하는 포인트에서 된소리 발음이 들어가는 단어를 쓴다거나! 그런 가사들은 참 들을 때마다 짜릿하다. 누가 불러도 신난다! 가수 혼자 즐길 수 있는 곡이 아니라 다함께 놀 수 있는 느낌?
설마 진짜 노래 하나 들으면서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을 할까? 싶을 수도 있지만, 나는 이런 식으로 내 오감이 충분히 자극받을 때에 비로소 삶에 있어서도 몰입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