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재취업하여 다니고 있는 직장에 후배가 들어왔다. 그 역시 나처럼 평생 공직에 근무하다 정년퇴직했다. 그 친구는 평생 바다가 없는 도시에서 살다 인생 2막에 바다가 보이는 당진으로 왔다면서 새내기처럼 들떠있다. 이제부터 정식으로 민간인이 되었으니 신고식을 한단다. 축하주가 먼저인데 신고주부터 마시게 생겼다.
비가 내리는 저녁에 꽤 잘한다는 숯불구이 집을 찾아갔다. 일전에 예약하지 않고 갔다 그냥 돌아온 집이다. 돼지갈비를 시키는 데 왕갈비가 있단다. 양도 많고 더 맛있다고 한다. 세 명이 조촐하게 앉아 왕갈비를 구웠다. 칼집을 낸 고기사이로 양념이 잘 배어 먹음직스럽다. 잔뜩 기대를 하고 잘 구워진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어보니 달아도 너무 달다.
단 음식이 못마땅한 나는 당황스러웠다. 당진의 대표 맛집 이라는데 나만 이상한가 하여 옆자리를 둘러보았다. 다들 맛있어 죽겠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고 보니 물김치와 야채샐러드며 온갖 반찬이 모두 달달하다. 마지막에 나온 된장찌개마저 단내가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이건 내 스타일은 아니다. 순간 웃고 떠드는 수많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낯설게 느껴졌다.
숯불구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분이 있다. 고향 마을에 사시던 어르신이다. 몇 십 년 전 내가 자동차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대학병원에 입원한 그분한테 문병을 가니 그날이 바로 퇴원하는 날이라고 했다. 그 당시 먼 시골까지 구급차를 대령할 수도 없고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마침 나도 시골집에 가려던 참이라 내 차로 모시게 되었다.
가는 길에 저수지가 보이는 식당에 들러 숯불 돼지갈비를 대접했다. 고기를 구워 드리니 달달한 양념소스를 치우고 맨 소금을 달라고 하신다. 병원에서는 절대로 소금을 먹지 말라고 했지만 그 어른은 괜찮다고 했다. 병원에서 치료도 포기했고 당신 나이가 죽을 때도 훨씬 지났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했다. 동행한 그분 아들이 걱정스러운 낯으로 소금 그릇을 치웠지만 내가 슬그머니 다시 챙겨드렸다.
그 할아버지 말씀은 단호했다. 고기는 소금을 찍어 먹어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이다. 양념소스가 모두 설탕물인데 왜 고기에 설탕을 찍어 먹느냐는 것이다. 그 후로 그 어르신은 돌아가실 때까지 그때 내가 사드린 숯불 돼지갈비가 최고로 맛있었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도 그때부터 고기는 무조건 소금을 찍어 먹기 시작하였다.
요즘 어느 음식점에 가도 단맛 천지다. TV에 나오는 유명한 음식전문가도 맛을 내려면 눈 딱 감고 설탕을 한 숟가락 듬뿍 치라고 한다. 단맛 때문에 살이 찔까 걱정하는 사람한테는 인공감미료까지 권하는 나라가 되었다. 어쩌다보니 나 역시 단맛에 마취라도 된 듯 아무 생각 없이 단맛을 즐기고 있다. 어느새 우리나라는 단맛 공화국이 되었다.
가끔 오래 전의 숯불갈비 그 어르신이 생각난다. 아마 그분을 다시 마주하면 단맛 공화국 사람들을 보고 더욱 놀라실 것 같다. 물론 단맛은 무죄다. 다만 지나치게 단맛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단맛 공화국 사람들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