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 신도시에 갈 일이 생겼다. 동행한 동료에게 용봉산 아래 맛 집에 들러 점심부터 먹자고 했다. 근처에 밴댕이찌개를 잘하는 집이 있다고 했더니 어찌 그리 똑같은 생각이냐며 맞장구를 친다.
밴댕이는 서해나 남해의 가까운 바다에서 오뉴월에 나오는 작고 볼품없는 생선이다. 다 커봤자 손바닥보다 작고 유난히 가시가 많다. 어릴 적 기억에 밴댕이는 날로 회를 쳐 먹거나 구워 먹는 게 아니라 젓갈 담는 생선이었다. 가끔 싱싱한 놈을 만나면 찌개로 끓여 먹기도 했는데 기름기가 많고 고소하여 그 맛이 일품이었다. 펄펄 끓던 양푼 냄비 속에서 뽀얀 밴댕이 한 마리를 통째로 건져 밥 위에 얹어 놓고 잔가시를 발라 먹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 김장철이 되면 우리 집 마당에는 밴댕이 젓갈 냄새가 진동했다. 지금이야 황태를 달인 물에 멸치나 까나리 액젓을 넣고 김장을 담그지만 그때는 값도 싸고 양도 많은 밴댕이 젓갈이 최고였다. 푹신 삭아 흐드러진 묵은 젓갈은 장작불에 달였다. 그렇게 담은 짠지에서는 비린내와 짠 내가 뒤섞인 밴댕이 냄새가 문득문득 배어 나왔다.
밴댕이 하면 떠오르는 게 또 있다. 오지랖이 넓다고 늘 핀잔 받던 어머니가 생전에 아버지 뒤통수에 대고 하던 말이다, 저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양반을 내가 아니면 누가 데리고 사냐는 것이다. 애먼 밴댕이를 빗대어 싸우시던 두 분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리는 듯하다.
오래된 노포를 찾아가는 길은 새로 길이 뚫려 내비게이션을 켜야 했다. 목적지 근처에 다다랐다. 이쯤부터는 내비게이션을 무시하고 내 기억이 반응하는 대로 가도 된다. 하지만 골목 안으로 들어왔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삼십여 년 넘게 다니던 밴댕이찌개집이 보이지 않는다. 아예 차에서 내려 둘러보니 골목 안쪽에서 옛 이름 그대로인 간판이 또 오셨냐고 반기고 있다.
오랜만에 찾은 식당 풍경은 모두 바뀌었다. 방바닥에서 등을 기대고 앉던 자리는 모두 식탁으로 바뀌었고 무한리필도 없어졌다. 여럿이 둘러앉아 찌그러진 양푼을 긁으며 밴댕이를 한 마리씩 건져 입이 터져라 상추쌈에 싸 먹던 정취는 온 데 간 데 없다. 깔끔한 반찬이 들러리 선 밴댕이찌개는 모듬 양푼이 아니라 한 그릇씩 펄펄 끓는 뚝배기에 담겨 나왔다. 반찬은 거들떠볼 새 없이 숟가락부터 담가본다. 다행히 간도 딱 맞고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특유의 풍미가 옛 맛 그대로다. 뚝배기 한 그릇을 닥닥 긁어먹은 동료 직원도 이마의 땀을 닦으며 한마디 거든다. 옛날 분위기는 사라졌지만 찌개 맛은 자신의 기억을 배반하지 않았단다.
세월이 흘러도 기억에 남는 추억의 맛은 더 진해지는가 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 시절 밴댕이찌개를 같이 먹던 지인들을 불러 옛정이나 나누어보면 어떨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