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병미 <물방울이 튄다>를 읽고
언제 떠올려도 포근해지는 말이 있다.
나직하게 불러보면 어린 날이 아련하게 떠오르며 가슴 한구석이 촉촉해지는 말, ‘엄마’라는 말이다.
이 말에서 제일 먼저 연상되는 정경은 ‘모정’과 희생적 사랑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그냥 뚝딱뚝딱하는 것 같은데도 찰떡처럼 맛있는 맛을 내는” 솜씨, 학교에서 돌아오면 웃으며 맞아주고, 다치거나 아플 때 따스하게 안아 주는 푸근함 같은 것이겠다.
임병미의 <물방울이 튄다>는 이러한 엄마 이미지를 충족시키지 못한 엄마로 인해 시렸던 지난날과 뒤늦게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된 딸의 깨달음을 꾹꾹 눌러 담아 섬세하게 펼쳐낸 글이다.
“기억 속의 엄마는 늘 아팠다.”
엄마가 딸을 돌보는 시간보다 딸이 엄마를 돌보는 시간이 더 길었다.
숨이 가빠질 정도의 힘겨움을 “혼자 가슴에서 삭혀야” 했으므로, “생각만으로도 온통 마음이 시리다.”
‘엄마에게 실컷 어리광을 부려보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한쪽 가슴에 뚫린 구멍’은 아직도 메워지지 않았다. ‘유년 시절에 받아야 할 사랑, 사춘기에 받아야 할 격려, 청년기에 받아야 할 위로’의 기억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이 결핍감은 특히 음식에서 예민하게 도드라진다.
엄마가 해준 음식의 기억이 없기에 ‘엄마로부터 이어오는 손맛’의 세계에 가닿을 수 없는 작가에게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음식이 참 많다는 지인’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작가에게도 ‘유일하게 기억하는 엄마의 맛’이 있으니, 엄마가 아프기 전, 생일에 만들어준 찰떡이다. ‘둘째 딸만을 위한 떡’, 그 ‘최고의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시간이 흐른 뒤, 작가는 돌보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이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딸의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 주지 못해도 늘 딸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기에 이른다.
엄마가 자리를 지켜주었으므로 자신이 성장하고 자식을 키워낼 수 있었음을,
“당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기에 그저 가슴 저민 울음을 흘렸음을”,
그리고 그런 마음이 자신을 ‘성장시키고 지탱해 주는 기둥’이 되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제 눈을 떴으므로 주변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반신이 불편한 이가 한 손을 휘저으며 수영할 때 사방으로 물이 튀자,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는 몸짓을 하는 그의 어머니가 다르게 보인다.
‘눈물’과 ‘고통’처럼 느껴졌던 물방울이 이제는 무지개로 보이는 것이다.
불편한 아들을 돌봐야 하는 것이 고통이 아니라 “눈이 빛나고 두 다리에 힘이 실”리는 기쁨임도 보인다.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엄마가 생일 찰떡을 해주던 날 떠올랐던 무지개는 이제 작가의 마음속에서 언제나 빛나지 않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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