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뾰토 May 19. 2024

당신은 어느 계절에 태어났나요?

 가끔 어떤 이와 이야기할 때, 이 사람은 어떤 계절에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물어보면 맞을 확률은 대충 반반이다. 그런데 나는 맞는 경우만 취해서 ‘아 역시 그렇지요?’ 하면서 반색하곤 한다.

 나는 특히 여름에 태어난 것 같은 이들을 좋아한다. ‘여름’하면 솔직하고 열정적인 에너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이들만 보면 여름에 태어났냐고 묻고는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 역시 여름에 태어났다. 그리고 ‘열정’이라는 것은 하나도 없는 인종이다. 이 얼토당토않은 여름에 태어난 이들은 열정적이라는 나의 사이비 이론은 나로부터 반박되는 것이다.


 내가 이런 질문을 처음으로 한 사람은 내 대학교 동기인 ‘민영’이다. 민영이는 얼굴부터 태양처럼 생겼다. 텔레토비 동산의 해님 같은 해님 캐릭터가 아니라 그냥 자연의 태양을 닮은 아이였다. 내면의 열정이 표정에서부터 드러나는 사람. 나는 그 친구를 매우 좋아했고, 어린애같이 맹목적으로 따랐다.


 그런 민영이와 일본 여행을 간 것도 여름이었다. 2006년 7월, 나와 민영이를 포함한 친구 4명은 일본 오사카시 동물원전역 인근의 라이잔 호텔에 14일 동안 묵었다. 1박에 1천 엔인 저렴한 비즈니스호텔.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라이잔 호텔이 있는 곳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우범지대였고 대낮에도 민소매 티만 입거나 웃통을 벗고 누워있는 노숙자들이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다는 거였지만 그런 것은 그 숙소의 압도적인 가성비를 생각하면 감수할 수 있는 문제였다.

 연일 40도가 넘는 고온이 지속됐지만 하루하루가 무척 즐거웠다. 우리는 한국에서는 입을 엄두가 나지 않은 형광색 티셔츠나 국적 불명의 캉캉치마 따위를 입고 깔깔 웃으며 잘도 돌아다녔다. 일본은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는 오타쿠의 나라라고 들었었는데 그런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튀는 괴상한 옷차림이었다. 그럴 때면 ‘너 때문에 쪽팔린다’면서 서로를 놀리고는 했다.


 하지만 마냥 좋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계획한 일본 여행은 시간 비용 대비 최대 관광을 목표로 한 아주 합리적인 여행이었다. 달리 말하면 체력을 갈아 넣는 다소 가혹한 일정이었다. 빈틈없는 일정 소화로 인해 우리 4명의 사이는 점차 삐걱대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다 같이 모여 카운터에서 빌린 한국 영화를 틀어놓고 수다를 떨던 초반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저녁 식사 후에 각자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런 답답한 상황에서도 여행이 이어진 것은 온전히 민영이 덕분이었다. 파파고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 우리 중 유일하게 토익 점수가 있는 민영이의 어눌한 영어와 바디랭귀지가 없었다면 일본 여행 자체가 불가능했을 터였다. 지도로도 알 수 없고, 길을 물을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도 민영이는 그 특유의 야생동물과도 같은 감각과 판단력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한 번은 1시간 넘게 목적을 잃고 길을 헤맨 적이 있었다. 다들 지쳐서 기진맥진이었는데 민영이가 갑자기 지나가던 일본인을 붙잡고 한국어로 뭐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남은 우리는 영혼이 반쯤 털린 상태에서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신기하게도 상대편 일본인은 당황하지 않고 일본어로 길을 가르쳐줬다. 각자 자신의 모국어로 말하는 기묘한 대화를 끝내고 돌아온 민영이는 손가락을 들어 멀찍이 작게 보이는 절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 중 하나는 짜증을 냈다. 이미 한 시간 전부터 발이 아파서 힘들어했던 친구였다. 그 친구를 다독이며 억지로 절로 향했는데 놀랍게도 절을 통과하니 목적했던 버스터미널에 도착하게 됐다.


 “어떻게 알아들은 거야?”

 민영이는 그냥 말이 통했다고 했다. 그 후에도 민영이는 난감한 상황에서도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친구들이 지칠 때마다 말없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기운을 나눠주는 민영이가 마치 태양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는 여름에 태어난 사람이 아닐까.

“민영아, 넌 여름에 태어난 사람 같아.”

민영이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나 11월생이야.”

 겨울에 태어났구나. 여름을 닮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여름에 태어날 이유는 없으니까.


그 대화를 하는 순간, 직감적으로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려서 이때를 회상하며 그리워하겠구나 하고. 그리고 실제로 나는 다음 해 학교를 그만둬서 함께 여행을 갔던 친구들과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만나게 된다. 무려 15년에 지난 후에 정말 우연한 기회로.


 어찌 됐건, 이 이후에도 나는 입버릇처럼 사람들에게 어느 계절에 태어났냐고 묻곤 한다. 사실 답변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계절은 사람의 특징을 분류하는 기준 중 하나고 그 계절을 닮은 고운 사람들과 말을 붙일 구실이니까. 나는 계절을 닮은 그들을 사랑한다. 그중에서도 여름은 나에게 열정과 젊음의 다른 이름이다.


여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쥐구멍은 비밀을 숨기기에 적당하지 않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