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회사에서 정전이 있었다. 날이 밝은지라 놀라지는 않았다. 전기나 통신 쪽으로 아무 예고 없이 끊기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니까. 이번 정전의 원인은 2층에서 에어프라이어기로 고구마를 돌린 것 때문이었다. 빠듯한 예산인 것은 알았지만 에어프라이어기 하나 돌리지 못할 정도로 간당간당한 용량으로 전기 사용계약을 했다니. 새삼 이직에 대한 충동이 솟구친다.
전기는 금방 돌아왔다. 에어프라이어기를 끈 모양이다. 곧이어 2층에서 내려온 직원은 잔뜩 미안한 표정으로 사무실 가운데에 있는 탁자에 고구마를 올려두었다. 아기 팔뚝만 한 고구마가 열 개도 넘는다. 다들 허탈하게 웃으면서 고구마 주위로 모였다. 정전은 정전이고 고구마는 고구마지. 아까 자료가 다 날아갔다고 빽-하고 소리를 지른 직원도 슬금슬금 사람들 옆으로 다가왔다. 순간 열이 뻗쳤어도 타박하지는 않는 뒤끝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순한 사람들이 모여서 고구마를 먹는다.
자칭 미식가인 팀장이 말했다.
“호박고구마도 밤고구마도 아니네.”
그러자 고구마를 가져온 직원이 말한다.
“꿀고구마예요. 저희 아버지가 직접 농사지으신 거예요.”
아버지께서 직접 재배한 꿀고구마라니. 말만 들어도 따뜻하고 달콤한 꿀이 가득 차 있을 것 같다. 절반을 가르자, 꿀처럼 노란 속살이 촉촉하고 보슬보슬하게 드러났다. 한입 베어 물자 역시 내가 생각했던 그런 맛, 그런 식감이다. 어릴 적 할머니 댁 아궁이 안에 은색 포일로 싸서 던져두고 밤새 하나씩 꺼내 먹었던 군고구마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엄마가 집에서 구워준 고구마 맛 정도는 되는 맛. 나는 고구마를 먹으며 시골 할머니 댁의 선선한 공기를 들이켰다가, 젊은 엄마의 가는 허리를 감싸 안았다가, 다시 사무실 탁자 앞으로 돌아왔다.
그 많던 고구마가 어른 열댓 명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쉬움이 남은 두세 명의 직원들만이 끈덕지게 탁자 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내 책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돈을 벌 시간이다. 하지만 입안에는 아직 연한 고구마 섬유질과 달큰한 향을 남아있다. 이 따뜻함이 나를 계속 이 사무실에 있게 할 테지. 시월의 첫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