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현타 오는 순간 순위를 매긴다면 부동의 1위는 업무와 무관한 의미 모를 일을 열심히 해야 할 때가 아닐까.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일주일의 희망인 주말에 나는 회사 사람들과 체육대회를 하기 위해 앉아 있었다. 하늘은 너무 높고 태양은 쓸데없이 쨍쨍하다. 가을 하늘이 공활한 게 딱 초등학교 운동회 때 본 하늘이었다.
내 출전 종목은 오전에 이미 끝난 단체 줄넘기.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16년 동안 체육대회에 선수로 뛴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도 딱히 자랑스럽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다행히도 1등을 했지만, 일주일 동안의 연습을 돌이켜보면 그것도 ‘부질없다’ 싶다. 제대로 심사가 꼬인 상태였다. 오전 7시 20분에 출근을 해서 오후 4시 20분인 지금까지 행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 어째 정규 근무시간보다 더 길게 일하고 있는데? 하며 모난 마음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우르르 천막으로 들어왔지만 나는 직원이라 일을 해야 했다. 노상에 늘어진 물건들을 천막 안으로 옮기며 ‘아 짜증 나, 이제 비까지 내리네’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 소리쳤다. ‘아 무지개다!’
고개를 돌리니 천막 사이 좁은 틈으로 고운 색이 보였다. 비를 가릴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천막을 뛰쳐나와 나와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릴 때 한번 본, 흐릿해서 저게 무지개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했던 것과는 달리 빨주노초파남보 완전한 무지개였다. 하늘은 높고 해는 한여름같이 짱짱해서 빗물 사이로 햇빛이 부서지는데 그 위로 크레파스로 그린 것 같이 선명하고도 따뜻한 색감의 무지개가 체육대회를 알리는 커다란 현수막 풍선이 위에 떠 있었다. 그래서인지 무지개까지 행사의 장식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쳐다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도 사정은 비슷해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비를 맞으며 무지개를 보고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탄성 어린 목소리로 무어라고 하는 것이 들렸다. 그 소리에는 설렘과 기쁨 같은 몽글몽글한 감정들이 얽혀 있었다. 나를 부르는 소리에 다시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옅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더는 불쾌하지도 억울하지도 않았다. 저 무지개는 오늘의 대가이다.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만이 저 무지개를 만날 수 있다. 이미 대가를 받은 마당에 투정을 부릴 이유가 있을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밖으로 나가니 무지개는 사라졌었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뒤풀이까지 야무지게 일정을 소화하고 집에 가는 길에 오늘은 어떤 하루였는지 생각해 본다. 오늘을 위해 준비했던 지난 며칠간의 노력과 단체줄넘기 시합과 다른 경기들을 지켜보며 사람들을 응원했던 일들과 그리고 무지개. 오늘도 현재를 전력으로 열심히 살았다. 비록 조금 투덜거리긴 했지만. 기쁘게 나를 칭찬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