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치스러움을 느낀 것은 초등학교 1학년 겨울이었다. 주말을 외가에서 보낸 우리 가족은 월요일 아침 집으로 돌아가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불운하게도 일요일 밤 이 지역에서는 매우 드문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고, 외가의 앞마당에는 어른 허리만큼의 눈이 쌓여 있었다. 나는 울었다.
‘학교는 어떻게 가. 결석해야 하잖아.’
나의 통곡에 부모님은 울지 마라며 소리를 질렀다. 옆에 있던 동생이 말했다.
‘부끄럽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멈췄지만 나는 고집스럽게 한참을 더 훌쩍였다. 당시에는 이 감정이 무슨 감정인지 몰랐다. 하지만 나는 내가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내가 동생보다 늦된 아이라는 것도. 나는 내 어린 동생보다도 느리게 자라는 아이였다.
하지만 이 사건이 있은 후로도 나는 매번 나의 욕구보다는 사회적 통념을 먼저 따랐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내 마음을 살피는 일보다 다른 사람들이 하라고 한 일을 처리하는 것에 급급했다. 반면 동생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명확했다. 그렇기에 누가 시키는 일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했다. 어른들은 시키는 대로 하는 나는 착하다고 칭찬했고 고분고분하지 못 한 동생은 못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못된 풀이 빨리 자란다는 말을 하며 동생을 더 귀여워하곤 했다.
어른들은 말했다.
“원하는 일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생길 거야.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해야 하는 일들부터 미리 해 놓아야 해.”
하지만 어른들이 해야 한다고 말한 일들을 하면 할수록 나는 그 해야만 하는 일들에 질질 끌려 다녔다. 심지어 나는 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대입이나 진로 결정에서도 내 생각보다는 어른들이나 사회에서 중요하다고 하는 가치대로 순위를 매겨 선택했다. 친구들은 물었다.
“그게 정말 네가 하고 싶은 거야?”
나는 명랑한 목소리로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하신 말을 고대로 내뱉었다. 친구들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고개를 돌려 텅 빈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은 울먹이고 있었다.
내가 타인의 말에 휘둘리는 사이 다른 아이들은 자신의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목표가 있는 아이들은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 천천히 식사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잠을 많이 자는 것은 청춘을 허비하는 짓이다. 모두들 힘차게 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무엇을 해야 하나’하고 갈팡질팡했다. 나는 너희가 정말 부럽다. 너희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다. 하지만 너희의 열정은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미치게 부끄러웠다.
한 송이 국화를 피우기 위해 우주 만물의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한 명의 사람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큰 흔들림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스럽다는 소리를 듣는 아이는 응당 사춘기를 보내야 하는 나이에 남들은 다하는 반항이나 어리광 따위를 부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 ‘사춘기’라는 단어는 공감하기 힘든 의미 불명의 언어일 수도 있다.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일을 한 점의 의심 없이 순순히 따르고 한 술 더 떠 자신이 감당하지도 못할 일들을 억지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다른 이들보다는 성숙한 15살 상태로 멈추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유형의 인간이 가장 많이 자라는 시기는 청소년기가 아니라 20대가 아닌가 싶다. 모든 것이 용납될 수 있었던 시기를 무탈하게 보내고 나서야 온갖 고민과 방황을 하고는 10대를 너무 착하게 보냈다며 투정 어린 진상을 부린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무한정의 자유와 빛나는 청춘이 기다리고 있다고 장담했던 시기. 그 화려한 시기의 입구에서 나는, 나 자신의 능력의 한계에 대해 태어나 처음으로 실망을 했고 부모님은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조숙하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남들보다 늦게 흔들린다는 의미를 가진 걸지도 모른다.
후에 한 친구가 말했다.
“무조건 빨리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야. 소화하는 게 느리면 천천히 먹어도 돼.”
고개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울먹거리고 있었지만 끝내 울음을 터트리지 않았다.
나는 아직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