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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뾰토 Oct 20. 2023

쓴다는 것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를 때 나는 시집을 읽는다. 나를 쓰고 싶게 만드는 것은 항상 사람이었으므로, 나에게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시집을 읽고 싶어 진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타인에게 편지를 받았을 때를 기억한다. 내심 친구들끼리 주고받는 편지를 동경했던 나는 노트를 찢어 보낸 편지 한 장에 가슴이 벅차올라, 바로 답장을 썼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쉽게 쓴 편지는 내 성에 차지 않았다. 나에게 소중한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아이에게 좀 더 그럴듯한 글을 주고 싶었다. 생전 안 읽던 시집을 읽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인터넷에서 얼핏 본, 언젠가 한 번쯤 읽어보리라고 생각했던 한 시인의 시집. 시집을 읽을수록 그 애에게 할 단어들이 떠올랐다. 해석도 안 되는 시집을 읽으며 마음이 가는 단어들을 가슴에 모았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시집을 읽게 된 계기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이 되지 않자, 나는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변변찮은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는 나의 모습을 보이기도 부끄러웠거니와, 쳇바퀴 돌기 같은 생활을 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내 사람이라고 여겼던 이들을 상당수 잃었고 나는 점차 텅 빈 사람이 되고 말았다. 어떤 것도 읽지 않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취업이 되고 나서도 나는 책을 읽지 않았다. 그러다 동료의 부탁으로 한 오프라인 모임에 같이 참석하게 되었다. 오프라인 모임의 재미를 알게 되자 자연스럽게 독서 모임에도 가입했고 당연한 듯이 글쓰기 모임에도 가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글을 쓰면 쓸수록 자꾸 시집이 읽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시를 쓰는 사람도 아닌데 어째서 시집이 읽고 싶은 것일까?


 첫 시집을 읽은 이후로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글을 쓰고 싶어지고 글을 쓰면 시를 읽고 싶어 진다. 시를 읽다 보면 또다시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누군가를 쓰고 싶다는 말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닐까.


 그리하여 나는 때때로 무슨 의미인지 모를 시를 읽을 때면 당신이 생각난다. 나는 당신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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