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홈스테이
요즘 같은 시대에 원에서 주도하는 홈스테이라니!!!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졸업반 마지막 행사 중 하나로 홈스테이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런 행사가 아직까지 큰 탈없이 유지되어 왔다는 게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이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시기까지 선생님들께서 얼마나 노심초사하셨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아이들의 홈스테이 호스트, 게스트로서의 경험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아시기에 많은 어려움을 감내하고 이 행사를 유지해 오신 것 같다.
먼저 아이가 게스트로 친구 집에 가기 전날 밤,
아이가 물었다.
"엄마, 나는 언제 친구집에 가?"
"어, 너 내일 간데. 잘 갔다 올 수 있지?"
사실 엄마인 나도 아이가 내일 하루 묶을 집이 누구네 집인지 어디에 있는지 아무런 정보도 미리 알 수가 없다. 다만 알고 있는 한 가지는 내일 아이가 홈스테이 게스트로 간다는 사실. 아이가 어디를 갔고, 무엇을 했는지는 아이가 다녀와야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아이가 혹시나 불안해할까 봐 눈치가 보였다. 워낙 낯을 가리기도 하고 그렇게 매일 보는 친구들과도 만나는 장소가 바뀌면 적응시간이 필요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아이가 점점 자라나고 원에서 친구들과 관계를 잘 쌓아온 덕에 7세가 되자 아이는 날개를 단 듯이 훨훨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이전의 낯을 가리던 아이의 모습이 참 많이 변했다. 그래도 엄마를 떠나 다른 친구의 집에서 잔다는 것이 이 연령 아이들에게는 쉬운 일은 아닐 테니 혹시나 불안하지는 않은지 최대한 티 나지 않게 나의 눈동자를 굴려 아이의 반응을 탐색했다.
아이는 불안은커녕 설렘이 대부분의 감정을 차지한 것처럼 보였다. '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알 수 없는 일말의 서운함도 공존했다. 이제 몇 년만 지나면 지겹도록 찾던 엄마를 뒤로하고 친구를 찾아 떠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아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자기가 내일 가서 입을 옷과 내복, 세면도구, 애착인형 그리고 안대를 챙겨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를 보내놓고는 마음이 참 묘했다. 한 명의 아이가 없는 빈자리가 너무나 느껴졌기 때문이다. 공간을 가득가득 메우던 두 아이의 소리에서 한 아이의 소리가 빠지고 여백이 생기자 난자리가 실감이 되었다. 하지만 둘째는 형아를 찾기는커녕 드디어 차지한 왕국의 왕이라도 된 듯 정말 행복해 보였다.
"아이들이 잠이 들었습니다. 안심하고 주무세요."
원장님으로부터 10시 반경에 문자가 왔다. 사실 걱정을 하지도 않았던 무정한 엄마는 10시에 쿨쿨 잠을 잤던지라,,, 죄송한 마음이기도 했고 또한 이토록 신경 쓰이는 일을 몇십 년째 유지해 오고 계신 원장님께 존경의 마음이 절로 나왔다.
다음날, 게스트로서의 경험을 마친 아이는 홀가분한 얼굴로 뛰어와 그 어느 때보다 반갑게 나의 품에 안겼다. 짐가방을 손에 든 또 다른 친구는 쭈뼛쭈뼛 저만치서 걸어오고 있었다. 오늘 우리 집에 온 게스트는 평소에 우리가 한 번씩 같이 만나던 친한 친구였기에 약간의 안도감과 함께 그렇게 나는 아들 셋과의 저녁을 시작했다.
오히려 둘째가 더 난리다. 내가 "◯◯야, 손수건 줄까?" 하면 어디서 갑자기 다다다다 뛰어갔다가 다다다다 손수건을 척 내민다. 함께 살고 계신 친정아버지도 괜히 자리에 앉지 못하시고 여기저기 서성이신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동갑내기 친구는 예의상 잠깐의 어색함을 즐기더니 갑자기 숨기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 같은 장소가 오히려 더 숨기 좋은 법이다. 구석구석 곤란한 장소를 잘도 찾아낸다. 제발 그 방은 열지 않았으면 했는데, 제발 그 옷장은 열지 않았으면 했는데,,, 나의 바람과는 전혀 상관없이 아이들은 그저 신이 났다.
깔깔깔깔.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모든 쓸데없는 생각이 날아가버리는 것 같았다.
그래,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집이 얼마나 깨끗한지가 너희에게 뭐가 중요할까. 이렇게 즐거운 것을.
원래도 내려놓았지만 아이들의 발랄한 웃음소리가 어른들의 쓸데없는 생각과 걱정을 말끔히 지워주는 듯했다.
이후에도 종류별로 본인들이 할 수 있는 보드게임을 돌아가며 싹 다 해보고, 피아노도 같이 쳐보고, 할아버지한테 바둑도 함께 배웠다. 둘째도 형아들이 1도 끼워주지 않았지만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같이 깔깔깔 웃어댔다. 그 모습이, 그 소리가 참 행복했다.(매일은 힘들겠지만 ^^;)
이날 밤, 잘 놀고 잘 먹고 이렇게 아들 셋과 함께 한 방에서 잠을 잤다. 무사히 잠이 든 세 녀석을 보고 있자니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척하면 척 알아듣는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하룻밤을 보낸 오늘의 추억이 아이들에게 평생을 살아가는 힘이 되는 작은 조각이 되길 바랐다.
오늘 학부모 모임을 하면서 마음에 남긴 한 가지.
아이들은 충분히 잘 자라고 있다. 부모는 믿어주고 지켜보면 된다.
단순한 결론이지만 실생활에 믿어주고 지켜봐 준 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은 노릇이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얼마나 많이 아이들에게 기회를 빼앗고 있는가 반성해 본다. 그리고 다짐한다. 오늘도 딱 한 걸음 아이의 뒤에 서 있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