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아이들
이곳의 아이들은 살아있다.
깔깔깔 웃음소리도 날것 그대로,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데에도 주저함도 없다. 때로는 송곳처럼 날카로운 말을 서슴없이 날리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주변 눈치를 보며 알아서 잘하는 '애어른'으로 자라온 나에게, 이곳 아이들은 부러움 그 자체다. 아이답게 반짝이는 시간을 온전히 온 마음을 다해 누리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7살로 돌아가 유치원을 다시 다니면 어떨까, 나는 가끔 상상해 본다.
몇 달 전, 유치원 부모 모임에서 들은 아이들의 도미노 공연 이야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교실 곳곳에 있는 모든 지형지물을 활용한 도미노. 점진적인 높이 변화를 고려해 쌓아 올린 구조물. 벨소리가 울리며 피날레를 장식한 설계. 곡선과 직선 구간마다 도미노 간격을 다르게 배치한 섬세함. 터널을 만들어 도미노가 지나가게 한 아이디어. 무엇보다, 도미노를 쌓다 잘못 건드려 와르르 무너질 상황을 대비해 중간중간 일부를 빼두거나 가로로 눕혀둔 방지책까지.
이 모든 디테일이 고작 7살 아이들의 손끝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에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과업에 끊임없이 몰두하고, 수많은 실패를 겪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결과물이 나올 수 없었으리라. 건축 구조에 대한 이해, 손끝의 협응력, 친구들과의 소통과 공감까지—모든 것이 어우러진 작은 걸작이었다.
사실 집에서도 도미노는 최고의 놀이 중 하나다. 책장을 비워 책으로 도미노를 세우고, 나무 블록, 피아노, 의자까지 온갖 물건들이 도미노의 배경이 되었다. 때로는 제발 그만하라고 외치고 싶다가도, 몰두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입을 막고 허벅지를 찌르며 참았다.
진정한 배움은 배우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 다리를 놓을 때 일어난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믿는다. 종이와 연필로만 배운 지식은 진짜가 아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배움에 대한 열의가 터져 나올 때, 비로소 진정한 배움이 시작된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열정을 깨우고,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것뿐이다.
7살 아이들이 삐뚤빼뚤 쓰는 글자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 친구의 이름을 통해 한글을 알아가고, 악보를 배우기 전 자신만의 악보를 그려보고, 마음껏 몸을 움직여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본다. 이 모든 게 아이들이 가진 특권이다. 그 특권을 꼭 지켜주고 싶다.
아이 둘을 키우기 위해 친정이 있는 작은 소도시에 정착한 지 7년. 내가 가장 잘한 선택을 꼽으라면, 단연 이 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낸 일이다. 선생님들의 일관된 관심과 지원 속에서 아이들이 자연과 몰입을 경험하는 시간은 분명 유아기 정서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나도 그 경험을 옆에서 엿보며 ‘믿고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믿는만큼 자란다고 했다. 전전긍긍하며 지켜보는 대신 묵직하게 믿고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살아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