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가면
나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평생 화가 나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물론 신랑과 투닥투닥하면서 아, 나에게도 화가 있긴 하는구나를 알게 되긴 했지만 이 여리디 여린 소중한 생명에게 나는 왜 화를 넘어선 분노가 치미는 것일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순식간에 캐치하는 독심술을 가진 나지만 내 마음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아이는 낮잠을 자고 일어날 때마다 30분씩을 울어댔다. 그것도 본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데시벨로. 그 어떠한 이유도 예상할 수 없었다. 친구의 아이는 차에서 잠들면 약간 과장해서 아이를 던지듯이 눕혀도 쿨쿨 잘만 자던데 어째서 내 아이는 차에서만 잠이 들고 옮겨 재우려고 하면 백에 구십 번은 깨는 걸까. 흔히 말하는 등센서가 민감한 아이였다. 본인 낮잠 인생 중 반은 기름을 태우며 차에서 잔 잠일 거다.
나는 내 그릇이 큰 줄로만 알았다. 다른 사람이 어떠한 이유로 잘못을 하거나 본인의 마음 상태가 좋지 않아 짜증을 내어도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며 넘기는 게 가능했다. 그저 그런 걸 신경 쓰고 같이 싸우는 것 자체가 피곤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갈등이 싫었다. 그 불편한 긴장감을 피하고 싶었기에 나는 포용할 수 있는 나의 한계치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어째서
이 어린아이에게는 이다지도 화가 나는 걸까.
곰곰이 고민해 보았다.
답은 금방 나오질 않았다.
아이가 나를 크게 힘들게 할 때마다 감정은 미친 듯이 널을 뛰었다.
나 자신이 진정 싫었다. 울고 화내고 후회하고.
이 패턴이 시간차를 두고 여러 번 반복되고 반복되던 어느 날 문득,
아! 그래서였구나!
착한 가면...
착한 사람 이어야 했다. 너그러운 사람 이어야 했다.
그 가면이 너무 어린 시절부터 씌어져 있었기에 원래 그렇게 태어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뭔가 한 번씩 속이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들이 강해지고 또 쌓이면서 내가 생각했던 나라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지진처럼 흔들렸다.
그것도 수시로.
내가 아이에게 분노했던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내가 착한 사람이라는 명제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린다는 점
둘째, 아이였던 나는 한없이 모두에게 맞춰주었는데 내 아이는 자기 마음대로만 한다는 점(아이로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그걸 받아 줄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나보다)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감정에 이상신호가 왔을 땐 사회적으로 이러해야 한다는 통념이나 윤리의식은 감정조절에 아무런 효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나는 그때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빛의 속도로 알아채면서 내 마음의 이상신호는 30년이 지나서야 겨우 알아채기 시작한 것이다.
두껍고 단단했던 가면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