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돋게 무서운 말
임신 5개월 차. 점점 몸이 무겁고 일상생활에서 불편한 점이 많아진다.
첫째는 틈만 나면 내 배에 얼굴을 파묻고는 서럽게 운다. 신랑은 여전히 주말에만 볼 수 있다. 부모님이 옆에 계셨지만 항상 죄송한 마음이 크던 나는 도와달라는 말도 목 끝까지 차올라야 겨우 내뱉는다. 두 분은 여전히 큰 딸을 무한대로 믿으시기에 힘들어 죽겠다고 하지 않으면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이제 배가 접히는 게 잘 안되니 첫째 아이를 씻기는 게 너무 힘들었다. 아이는 온갖 짜증을 낸다. 갑자기 목이 멘다.
"아빠... 씻기는 거.. 좀 도와주세요!"
왜 이다지도 외로운 걸까. 누군가 같이 있는데도 항상 혼자인 느낌. 서럽고 또 서러웠지만 이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기 조차 싫었다. 혼자 깊은 굴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싶었다.
신기하게도 신랑은 꼭 내가 힘들 때 아프다.
이번주도 갑자기 못 온다고 연락이 왔다. 역시나...
설상가상으로 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39도. 괜찮을 거라 마음속으로 되뇌며 사람이 바글바글한 병원에서 정신줄을 바짝 부여잡고 있었다.
제발 입원이 아니라 통원치료가 가능하기를...
나의 간절한 바람이 무색하게도 아이는 특별한 원인이 보이지 않으나 염증 수치가 많이 높아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오 마이갓.
에너자이저 4살짜리 아들과 좁은 방에서만 며칠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잠이 들라치면 딸각 불이 켜지고 의무적인 의료행위와 대화가 오갔다. 주삿바늘과 치렁치렁 긴 줄은 아이의 신경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나의 예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아이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고 결국 다음날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 아주 아주 긴 낮잠을 자야 했다.
금요일 밤.
퇴근하고 온 아빠들과 아이들의 소리로 바깥이 시끌벅적했다. 가슴 한 켠이 쓰라렸다. 분명 나에게도 남편이 있는데, 아이의 아빠가 있는데 결국 언제나 그랬듯 나는 엄마이자 아빠이자 남편이 되어야 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쓰라린 마음의 통증이 가신 뒤엔 단전에서부터 단호한 결심이 올라왔다.
지금 우리의 관계, 상황이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이제는 정말 알아야겠어.
마침 친한 언니가 부부특강이 있으니 같이 들어보자고 알려주었다. 아이가 생존을 위한 낮잠을 자던 그 몇 시간 동안 나또한 살기 위해 강의를 들었다. 감히 말하건대 이 강의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참았던 눈물이 쉴 새 없이 옷을 적셨다. 아이의 기질을 알아보고자 그 분의 책을 샀고 기질강의를 들었었다. 그런데 부부를 위한 이 강의를 들은 이후로 나는 나의 기질과 남편의 기질, 나아가 우리의 상처와 결핍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용기 내어 선생님께 질문을 드렸다.
선생님은 내가 참 많이 외롭고 힘들었겠다 하셨다. 그리곤 본인의 폰은 업무폰이니 마음 놓고 이야기할 곳이 없으면 얼마든지 이 대화창에 내 감정을 쏟아놓아도 된다고 하셨다. 나를 본 적도 없고 그저 본인의 강의를 한번 들은 것일 뿐인데 어떻게 나에게 이러실 수 있을까.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진짜 내 얘기를 선생님께 털어놓았다. 어찌나 성심성의껏 답해주시던지 당장 찾아가서 비용이라도 지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날 이후 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항상 문제를 만든다고 생각했었다. 나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그런데 아니었다. 공감능력이 낮은 그도 문제를 제공하긴 했지만 나 또한 비이상적으로 공감적이었다. 우린 마치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있는 것과도 같았다.
결론은 우리 둘 다 문제였다.
무엇보다 소름 돋았던 건
양육의 대물림.
지금의 내가 있게 한 양육환경,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양육환경을 돌아보게 되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 부모님, 시부모님은 어떤 양육환경을 거쳐오셨고
어떤 상처와 결핍을 가지고 계셨을까까지 시야를 확장하게 되었다.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가 않았다. 전혀.
그런데 강의를 듣고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아빠 같은 사람을 찾아 엄마처럼 살고 있었고, 신랑은 어머니와 같은 사람을 찾아 아버님처럼 살고 있었다. 나는 분명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아빠 같은 남편은 원치 않았다.
그런데...
신랑은 너무나 아빠 같았다.
아니, 엄마의 남편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