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의 로망이 깨진 순간, 진짜가 시작됐다

낭만 아닌 용기

by 샤인포레스트

사람들이 말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냐고, 참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나는 속으로 으쓱했다.


그래,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이야.
삶을 바꾸는 데 주저하지 않는 사람.
가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방향을 틀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용기 있는 행동’이 현실이 된 날.
아니, 그날 직후부터 예상치 못한 진짜 현실이 시작되었다.
슬프게도 현실은 해피엔딩 동화처럼 나에게 한없이 다정하지 않았다.

바람은 매섭게 불어댔고, 기대했던 ‘제주살이의 로망’은 생각보다 빨리 깨졌다.

그저 삶에서 큰 전환을 맞이하면, 내 인생도 가족의 인생도 꿈꾸던 것처럼 눈앞에 펼쳐질 줄로만 알았다.
그토록 바라던 제주, 초록이 내다보이는 2층집, 그리고 매일 웃음이 흐를 거라 믿었던 가족.

그 모든 아름다운 상상들이 나를 구원해 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바뀐 건 배경뿐이었다.

거실 창문 너머의 풍경은 분명 달라졌지만, 그 안의 우리와 나는 여전히 익숙한 불안과 고단함 속에 있었다.
어쩌면, 그토록 바라던 삶을 손에 넣었을 때 이제야 진짜 문제가 속살을 드러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설레었던 이주의 첫 일주일은 흥분 그 자체였다.
집을 어떻게 정돈할지, 무엇을 사야 할지, 온통 새롭고 낯설었다.
식탁을 이렇게 놓아볼까, 소파는 저쪽이 좋을까.
기나긴 주말부부 생활 끝에 아이들 방과 서재까지 온전히 네 식구가 함께 처음으로 만들어가는 그 시간이 신기했고, 행복했다.


택배는 하루에도 몇 번씩 쌓였고, 마치 부자가 된 것만 같았다.

살면서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많은 ‘선택’을 해야 했다.
포장을 뜯고, 정리하고, 비닐을 버리고—어림잡아 백 번은 넘게 이 행위를 반복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롭고 분주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착 전 설렘’의 영역이었다.


더 이상 우린 달콤한 일탈을 즐기는 여행자가 아니었다. 굳이 에너지를 쓰지 않고도 평탄하게 굴러가는 ‘일상’. 그 일상을 만드는 게 목표인 낯선 이방인일 뿐이었다. 물건을 들이고 가구를 놓는 일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일’을 정비하고 챙겨야 했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살지,

쓰레기를 어디에 버릴지,
여기가 나은지 저기가 나은지,
그 모든 게 막막했다.


삶의 바퀴가 자연스럽게 굴러가기 위해서
그 바퀴 아래 깔려있는 숨은 돌부리부터 하나씩 찾아내어 치워야만 했다.
그게 바로 '적응'이라는 이름의 고된 작업이었다.


비바람은 며칠이고 계속됐다. 낯선 제주의 차가운 2월은 그렇게 우릴 몰아붙였다.
여섯 날을 연속으로 비가 내리던 날, 아이가 물었다.


“엄마, 왜 여기엔 매일 비가 내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답 중 가장 심플한 답을 택했다.

“응, 여긴... 원래 그래.”


사실은 나도 정답을 몰랐다. 아무도 나에게 삶의 정답을 가르쳐준 사람은 없었다.

원래 그런가 보다.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 집이 있는 동네는 도심과 꽤 떨어져 있어서 식당 중 다수가 아침 7시에 문을 열고

오후 3~4시면 문을 닫는다. 마트도 밤 9시면 문을 닫는다.
어느 날, 저녁 8시 반에야 다음날 아침에 먹을 게 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닭장에 닭을 몰듯이 아이들을 마구 몰아 차에 태우고 황급히 마트로 달려갔다.

그때 내가 느낀 건 '자유'가 아닌 '단절감'이었다.


쓰레기 문제도 예상 밖이었다.

제주살이의 상상에 쓰레기 분리수거는 전혀 들어있지 않는 분야였다.
아파트가 아니었기에 단지 안에 쓰레기를 버릴 곳은 당연히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쓰레기를 차에 싣고 ‘재활용 도움센터’까지 가는 건 상상밖의 일이었다.
심지어 음식물 쓰레기까지 차에 싣고 나가야 한다는 건 제주살이에서 겪어내야 할 또 다른 현실이었다.


물가는 음..
과일을 사랑하는 나는 처음 마트에 가서 본 과일 가격에 깜짝 놀랐다. 특히 수입과일 같은 경우엔
1.5배는 기본, 상태도 좋지 않아 사자마자 버려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그 후로는 마트에서 수입 과일을 거의 사지 않게 됐다.


‘아,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구나!’



그리고, ‘외지인’이라는 낯선 이름.
다행히(?) 내가 사는 동네는 외지인이 많은 지역이라 그런 시선을 직접 느낄 일이 많이 있지는 않았지만 제주 토박이와 이주민 사이에 뭔가 모를 일종의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이 4·3 사건의 가장 깊은 상처를 지닌 지역이라는 것을 알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의 거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주란 단순히 짐을 옮기는 일이 아니었다.
낯선 땅에 마음의 뿌리를 천천히 내리는 일,
무너진 루틴을 다시 쌓아 올리는 일,
매일 익숙하지 않은 것을 견디며 '나'를 새롭게 적응시키는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해 가는 일이었다.


이곳 제주엔 분명 낭만도 있었지만, 익숙한 것을 모두 내려놓고 나와 우리를 다시 써 내려가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