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작업실에는 맥없이 끌려다니는 노인의 지팡이처럼 불규칙적으로 울리는 소리가 둘 존재했다. 하나는 프린터에서, 다른 하나는 창문 위에 달린 제습기에서. 가장 많은 것은 화이트보드, 특히 새하얀 보드 위에 덧칠된 유성 잉크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분류도 체계적. 큰 분야의 주제부터 시작해서 작은 사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수작업이었고, 대충 필기하여 내버려둔 것이 없었다. 여자가 입을 열겠단 다짐을 시작한 것도 존경스럽기 짝이 없는 카리브의 작업실 내부를 눈에 담으면서부터일 것이다. 카리브는 그러했다. 남들의 시선, 가까이로는 동료들의 시선, 그것이 두 번째였다. 다리를 건너가면 가더로부터 죽임을 당한 사람이 나올지언정 카리브는 그것이 두 번째였다.
「그 결과로 카리브는 좋은 집을 구했으며, 질 좋은 음식을 매일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카리브는 그 대가가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을 반납하는 것임을 잘 알았다. 돌아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곳. 이제는 꿈에서만이 닿을 수 있는 곳.」
“이거 한번 봐 볼래요?”
카리브는 스케치를 여자의 앞으로 건네며 말했다.
“음…, 열매 수를 좀 더 늘릴 수는 없을까요? 여기랑 여기.”
여전히 아름다운 은색의 머릿결이었다. 긴장도 풀린걸까. 얼굴로 붉은 기가 흐른다.
“어디에 새긴다고 했죠?”
카리브는 물었다.
“어깨…”
여자가 손으로 부위를 움켜쥐며 대답했다.
“본인 어깨가 그렇게 굵은 것 같아요?”
카리브는 여자의 어깨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열매가 많아야 그림이 풍성해지잖아요.”
여자가 뒷걸음치지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요량이라는 걸 알리려는 듯이 계속해서 어깨를 주물렀다.
“풍성해서 뭐 하려고요. 누구 나눠 줄 것도 아닌데.”
“제가 원하는 건 주렁주렁한 마라카투라예요.”
“고집 세네요.”
카리브는 한쪽 다리를 틀어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책상 위의 필통에서 새 연필 하나를 꺼내고는 천장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답답하세요?”
여자가 물었다.
“조금.”
“그래도 못할 정도는 아니에요.”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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