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펍에서 나온 딘은 가슴을 쓸어내린 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길에는 완연한 어둠이 깔려 있었다. 딘은 펍 위에 매달린 이름 석 자가 내려 주는 흰색의 빛을 따라 걸음을 내렸다. 빛은 앞서 초저녁에 보였던 것보다 훨씬 더 은은하고 길이가 길었다. 불빛이 끝나는 지점까지 다다른 딘은 멈춘 자리를 확인하고서, 가지가 무성한 왼편으로 몇 걸음을 내디뎠다. 겹겹이 뭉친 잎사귀가 하늘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듯 보이는 그곳에서, 딘은 컴컴한 장벽의 윗부분을 쳐다보았다.
“더럽게 높군.”
딘은 그와 동시에 생각을 이어 나갔다. 저 높은 곳을 오르려면 비범한 능력이 필요할 거야. 제일 손쉬운 건 하늘을 나는 능력이겠지. 아주 속 편한 능력이야. 나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 모두를 실어다 넘길 수 있으니까. 그게 과분하다면, 계단을 만드는 능력도 괜찮겠어. 그 한 주간 몸은 아프겠지만, 적어도 안전한 길 하나를 건사해 놓은 셈이니까. 그리고 딘은 생각에서 빠져나오며 누군가에게 말하듯 혼잣말을 뱉어냈다.
「그래요…, 그러니까, 결국 지금 저희에게는 확언을 할 만한 것들이 아무것도 없는 셈이 되는 겁니다. 하늘을 가로지를 길도, 마음 편히 다리를 올려놓을 발판도, 그 어느 것도요.」
그 뒤로도 딘은 한동안 장벽을 보며 푸념했다. 벽을 오르는 자신을 상상하면서, 벽에서 떨어지는 자신을 상상하면서. 그리고 입술 바로 앞까지 담뱃재가 타들어 오자, 딘은 그것을 마쳤다. 소년과 함께 택시에서 내렸던 곳까지 단숨에 걸음을 옮긴 딘은 그 자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환락가로 방향을 돌렸다. 환락가는 멀지 않았다. 설령 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조밀하게 붙어 있는 조명들이 매혹적인 여성의 눈처럼 모여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거리라는 신뢰를 사람들에게 안겨 주고 있었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걷기를 10여 분. 입구 바로 앞쪽까지 내밟은 딘은 코트 소매를 걷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3시 09분.
딘은 걷었던 소매를 내리며 다시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농밀한 색의 등불 아래에 세 명의 여성이 수증기와 같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들 중 한 사람이 딘을 쳐다보고는 말했다.
“조심하세요.”
딘은 셋 중 누가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인지 정확하게 가려냈다. 딘은 왼쪽에 서 있는 여자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합니까?”
딘이 가까이 오자, 둘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여자가 대답했다.
“여자, 특히 타투 있는 여자.”
딘은 코웃음 치며 대꾸했다.
“초면인 사람에게 조언을 안겨 주는 사람보다는 위험할 것 같지 않은데요.”
딘의 말에 여자는 증기를 들이마시고는 그를 뿜어 내며 말했다.
“조금 전 나와 잔 남자는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길래 당신은 어떨지 궁금했어요.”
“그래요, 어떤 대답을 해 드릴까요.”
“그저 알겠다고만 해 줘요.”
여자는 딘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몹시도 슬프고, 몹시도 촉촉한 눈이었다. 딘은 한참 동안 여자와 눈을 맞추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옆으로 발걸음을 내렸다.
“조심해야 할 건 그것뿐입니까?”
여자는 짧게 네, 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딘이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따라 걸으며 입구서 천천히 멀어졌다. 딘은 여자가 떠난 자리에 조금 더 머물렀다가,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거리는 붉었다. 입구는 당연했고, 저 멀리 높게 치솟은 건물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환락가의 사람들 대부분은 건물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리고 남녀 나눌 것 없이 모두가 황폐했다. 얼굴, 옷차림, 전부가 말이다. 딘은 코트의 깃을 세운 채 길의 중앙을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딘은 귀가 가려진 행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향해 오는 시선은 가리고, 자신은 사각을 철저히 지킨, 절묘한 각도로 그들을 눈에 담았다. 딘의 유흥은 간단했다. 장면을 시야에 집어넣고, 그 순간을 기억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그것이 슬라이드 필름처럼 연결되어 머릿속에 저장됐다. 딘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어느 가게 앞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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