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최후

4화 : 위암 말기, 그녀가 남긴 성적표

by 현영강

그녀는 내 어린 시절의 독재자였다.

맞벌이 부부였던 부모를 대신해,

이모가 나를 키웠다.


아니, 나를 제작하려 했다.

그녀에게 나는 조카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을 복권이었다.


나는 달리는 행위를 좋아했다.

육상선수를 꿈꿨다.


붓을 잡는 것도 좋아했다.

먹물이 화선지에 번지는 그 고요함이 좋았다.


하지만 이모는 그 모두를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딴 거 해서 뭐 할래? 밥 굶기 딱 좋다. 공부해, 공부."


그녀의 치맛바람은 태풍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등한시했다.


화장품 하나, 옷 한 벌 제대로 사지 않으면서

벌어들인 돈을 내 머릿속에 쏟아부었다.

그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그녀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내가 '사'가 들어간 직업을 가지는 것.


그런데 그 결과가 고작 이것인가.

그렇게 악착같이 벌이를 하고,

내 숨통을 조여가며 미래를 대비했던 여자가.


정작 자신의 몸속에서 자라나는

암 덩어리는 막지 못했다.


평생을 돈, 돈 거리며 나를 채찍질했던 그녀가,

지금은 돈이 없어서 항암 치료도 포기한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녀 앞에 앉아,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을 생각했다.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사'자 직업은커녕,

돈도 안 되는 글을 쓰는 무명 작가.


그리고 그녀가 막아섰던 육상 대신,

인생이라는 트랙에서 4등만 하고 있는 조카.


당신은 투자를 실패했고,

나는 당신 때문에 내 유년의 기쁨을 잃었다.

이 비참한 성적표를 받아 들고,

그녀는 이제 퇴학을 준비하고 있다.


화가 나야 하는데, 매일 눈물이 난다.

나를 괴롭혔던 그 지독한 집착이,

사실은 그녀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유일한 방식이었음을 알기에.


자신을 갉아먹어서라도 나를 빛내고 싶었던,

그 비뚤어진 욕망마저 이제는 흙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모, 나, 끝까지 달려 보려고."

"이모,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

"사랑해, 이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