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 아니면 상황
내 심장은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요란하게 뛴다. 첫사랑을 마주한 소년의 설렘 같은 낭만적인 이유가 아니다. 그보다는 오래된 엔진이 굉음을 내며 헛도는 것에 가깝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100미터 전력 질주를 막 끝낸 사람처럼 흉곽이 들썩거린다.
의학적 진단명은 '교감신경 항진증'
그리고 그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불안장애.
이 건조하고 사무적인 병명들을 처음 진단서에서 마주했을 때, 나는 묘한 아이러니를 느꼈다.
교감신경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원시시대였다면 숲에서 맹수를 마주쳤을 때나 켜져야 할 투쟁 혹은 도피의 스위치다.
생존을 위해 전신의 근육을 긴장시키고, 동공을 확장하고, 심박수를 극한으로 높여 당장이라도 도망칠 준비를 시키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방어 기제.
그런데, 평온한 21세기를 사는 내 몸에서는,
그 비상벨이 24시간 멈추지 않고
울려대고 있다는 뜻이다.
맹수도, 적군도 없는 한구석에서
나는 혼자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몸의 착각도 무리는 아니다.
나는 창작을 한다.
그것도 살인과 음모, 인간의 밑바닥에 깔린 악의를 파헤치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쓴다.
남들이 평화롭게 잠든 시간, 내 머릿속에서는 매일 밤 누군가가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시체가 유기되며, 범인은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유유히 도주한다.
주인공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나는 그를 구하기 위해, 혹은 더 잔인하게 추락시키기 위해 수십 가지의 파국을 시뮬레이션한다. 뇌가 매일같이 그런 가상의 위기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으니, 미련할 정도로 정직한 내 몸뚱이는 그걸 현실로 착각한 모양이다.
주인님, 지금 위험한 상황이군요. 전투 태세를 갖추겠습니다. 아니, 진정해. 나는 그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뿐이라고. 하지만, 이미 솟구친 아드레날린은 내 구차한 해명을 들어주지 않는다.
1995년생, 부산 출신의 건장한 남자.
겉보기엔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그 속은 이미 너덜너덜한 넝마나 다름없다.
첫 장편 반반한 마을을 지을 때
내 신경의 절반이 타 들어가는 것을 느꼈고,
두 번째 소설 식물인간을 쓸 때
나 역시 반쯤은 감정이 없는 식물처럼 굳어갔다.
세 번째 이야기 세 굴레 출판사를 끝내고 영상화 계약을 맺으며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을 때쯤엔, 성취감보다 독한 약 기운이 먼저 나를 덮쳤다.
문득 궁금해진다.
원래 글을 쓴다는 건 필연적으로 이런 것인가.
이 땅의, 아니 이 세상의 모든 글쟁이들은 다들 어딘가 하나씩 고장 난 채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적어도 예술의 영역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거짓말인 걸까.
어쩌면 이것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할 등가교환인지도 모르겠다. (자위일지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이면을 보려 하고, 느끼지 않아도 될 타인의 고통을 예민하게 감각해야만 비로소 한 줄의 문장이 나온다. 남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비명 소리를 기어이 주워 담아 내 것으로 소화해야만 이야기가 된다.
그 예민함이 종이 위에서는 재능이라 불리고, 현실의 육체에서는 병증이라 불릴 뿐이다. 그러니 나의 이 불안과 통증은, 내가 소설가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가혹한 보증서 같은 게 아닐까.
오늘도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불안이 그림자를 적신다.
나는 익숙하게 가방을 뒤져 하얀 비상약을 꺼내 삼킨다. 화학 성분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억지로 신경계를 진정시킬 때까지 기다린다. 약효가 돌기 시작하면 나는 다시 노트북을 연다.
그리고 다시 그 불안정한 세계 속으로,
나의 반반한 지옥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
아프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아프다.
하지만 쓰지 않아서 아픈 것보다는,
쓰고 나서 아픈 편이 낫다.
그게 내가 선택한,
이 빌어먹게 매력적인 형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