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 휴식과 도태 사이, 그 달콤하고 위험한 경계
마포에 다녀온 뒤,
감기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만나서 반가웠다. 뻥이다.
아프니까 청춘인지는 모르겠고, 일단 아프니까 누울 권리가 생긴 것이다. 나는 열이 난다는 핑계로, 기침이 나온다는 핑계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사각의 늪, 이불 위로 몸을 던졌다.
문제는 열이 내리고 기침이 멎은 뒤에도, 내 등짝이 매트리스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분명 회복을 위한 휴식이었다. 하지만, 48시간이 지나고 72시간이 넘어가자, 그것은 휴식이 아니라 침전에 가까워졌다. 방 안의 공기는 고였고, 내 몸을 끌어당기는 중력은 평소보다 세 배쯤 강해졌다.
이불은 거대한 식충식물의 잎사귀처럼 끈적하고 포근하게 나를 삼켰다. 누워 있는 것은 달콤하다. 직립보행을 포기하는 순간, 인간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도 바닥으로 흩어진다.
천장을 보고 누우면 세상은 납작해진다.
압박도, 차기작에 대한 고민도, 통장 잔고의 비명도, 누워서 보면 저 천장 구석에 붙은 작은 얼룩처럼 하찮게 보인다.
그 무력한 평온함에 취해, 나는 며칠째 천장 벽지의 무늬 개수나 세고 있다.
나태(懶怠)
그것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무서운 관성이다. 한번 멈춘 거대한 수레바퀴를 다시 밀려면 엄청난 힘이 필요하듯, 한번 바닥에 들러붙은 육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는 뼈를 깎는 에너지가 든다.
나는 지금 그 에너지를 쓰기 싫어서, 배터리가 방전된 장난감처럼 널브러져 있는 것이다. 문득 섬뜩한 생각이 든다. 인간이 가장 완벽하게 눕는 순간은 언제일까.
바로 관(棺) 속에 들어갈 때다.
지금 나의 이 자세는, 죽음과 가장 유사한 형태다.
숨만 쉬고 있을 뿐, 생산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사고하지 않는 상태. 이것을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대로 계속 누워 있다가 내 영혼마저 욕창이 생겨 썩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불 속의 온기가 어머니의 품이 아니라,
나를 서서히 부패시키는 늪의 온도라면?
인정해야 한다.
감기는 핑계였고, 마포행은 방아쇠였을 뿐이다.
사실 나는 지쳐 있었고, 도망치고 싶었고, 그럴싸한 구실을 찾아 숨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안락한 벙커는 영원할 수 없다.
계속 누워 있다간, 나는 소설가가 아니라 그저 침대 위에 놓인 거대한 가구가 되어버릴 테니까. 등이 배겨온다. 오래 누워 있어 척추가 보내는 통증이다.
이제 그만 일어날 때가 되었다는,
내 몸이 보내는 마지막 구조 신호다.
나는 억지로 몸을 비틀어 중력을 거스른다. 관절에서 우두둑 소리가 난다. 녹슨 기계가 다시 돌아가는 소리다. 몸을 일으켜 앉자 머리가 핑 돈다.
어지러운 게 아니다. 정지해 있던 뇌가, 빠르게 돌아가는 현실의 속도에 다시 적응하고 있는 현기증이다.
무서운 건, 낫지 않았음에도 나았다고 자위하는 것.
사실, 오늘도 병원을 다녀왔다.
허나, 글은 계속 써야 필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리 생각한다.
빨리 털고 일어나고 싶다.
누워 있기엔, 아직 써야 할 문장들이
산더미처럼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