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神)이 되는 유일한 시간

21화 : 이 지독한 활자의 쾌락에 관하여

by 현영강

​사람들이 묻는다.


돈도 안 되는 글을 왜 그렇게 미친 듯이 쓰냐고.
손목이 나가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마감 때면 위장병을 달고 살면서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자판을 두드리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적당한 핑계를 댄다.


자아실현이라거나, 먹고살기 위해서라거나, 혹은 작가로서의 행복감 같은 그럴듯한 단어들을 나열한다.
하지만 그건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내가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훨씬 더 원초적이고, 위험하고, 중독적이다.
​나는 현실에서 무력하다.


카드값 52만 원에 전전긍긍하고, 불친절한 타인에게 상처받으며,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 약을 달고 사는 나약한 인간이다. 이 거대한 세상의 톱니바퀴 속에서 나는 대체 가능한 부품, 아니 어쩌면 끼어 있는 먼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글 프로그램의 하얀 백지 앞에 서는 순간, 나는 달라진다. 그 사각의 프레임 안에서 나는 전능한 신이자, 절대적인 조물주다. ​나의 손가락 끝에서 세계가 태어난다.


내가 "비가 내렸다."라고 쓰면 그 마을엔 홍수가 나고, "그가 죽었다."라고 적으면 아무리 강한 선인도 숨을 거둔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있고, 죽은 자를 살려낼 수도 있으며, 억울한 자의 복수를 대신해 줄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낼 수 없었던 목소리를 활자라는 확성기를 통해 마음껏 내지를 때의 그 해방감. 그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정신적인 오르가슴이다.


​글이 잘 써지는 날의 쾌락은

그 어떤 미약보다 강렬하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추상적인 생각들이 완벽한 문장이 되어 모니터에 박히는 순간. 마치 테트리스 블록이 빈틈없이 맞아떨어지며 사라질 때처럼, 뇌의 주름 사이사이에 끼어 있던 불안과 잡념이 깨끗하게 소거된다.


​그 순간에는 배고픔도 잊고, 통증도 잊는다.

시간은 물리적인 흐름을 멈추고 오직 나와 모니터 사이의 진공 상태로만 존재한다. 그 몰입의 시간 동안 나는 교감신경 항진증 환자도, 불안장애 환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이야기를 짓는 건축가이자,

그 이야기 속을 유영하는 탐험가일 뿐이다.


​어쩌면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불행하지 않기 위해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지 않는 동안의 나는 너무나 예민하고 취약해서, 현실의 작은 자극에도 쉽게 부서지니까.


그래서 나는 도망치듯, 혹은 귀가하듯 다시 키보드 앞으로 돌아온다. ​활자는 나의 도피처이자 유일한 구원이다. 비루한 현실의 나를 지우고, 내가 꿈꾸는 나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유일한 윤회(輪廻)의 공간.


​엔터 키를 누를 때마다 나는 확인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쓴다.

그리고 씀으로써, 나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오늘도 나는 모니터라는 작은 우주 속으로 다이빙한다.


이 깊고 어두운,

그러나 눈부시게,

황홀한 활자의 바다에 빠져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이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행복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