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26화 : 점멸

by 현영강

택시 뒷좌석은 서늘하고 건조한 합성 가죽 냄새로 채워져 있었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밤거리의 네온사인들이 유리에 맺혀 일그러졌다가 다시 펴지기를 반복했다. 자정이 가까워진 텅 빈 교차로, 신호 대기를 위해 차가 멈춰 섰을 때 좁은 실내를 채운 것은 오직 일정한 간격의 마찰음뿐이었다.


​똑, 딱. 똑, 딱.


​좌회전을 예고하는 방향지시등의 기계적인 메트로놈 소리. 1초에 한 번, 혹은 그보다 미세하게 빠른 그 완벽한 주기는 정지된 시간 속에서 유독 날카롭게 고막을 파고들었다. 나는 시트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 무의식적으로 그 소리에 내 호흡의 간격을 맞추려 애쓰고 있었다.


​운전석의 기사는 미동도 없었다. 계기판의 푸르스름한 빛이 그의 굽은 어깨와 무심한 옆얼굴을 박제된 표본처럼 비추고 있었다. 그는 다음 교차로에서 꺾어야 한다는 명확한 목적을 기계에 입력해 두었고, 기계는 붉은 신호가 끝날 때까지 성실하고도 강박적으로 그 의도를 바깥세상에 발산하는 중이었다.


​창밖의 젖은 아스팔트 위로 주황색 불빛이 일정한 리듬으로 번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켜짐과 꺼짐.


존재와 부재. 그 명확하고 얄팍한 이분법이 기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세상의 모든 복잡한 관계와 경로들이 저렇게 단순하고 정직한 점멸만으로 예고될 수 있다면, 삶은 훨씬 덜 피로할 것이다.


​이내 신호등이 푸른색으로 바뀌고, 기사가 부드럽게 엑셀을 밟았다. 차체가 회전하며 스티어링 휠이 원래의 각도로 돌아오자, 방향지시등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꺼졌다. 강박적인 규칙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다시 불규칙한 타이어 마찰음과 엔진의 진동만이 어지럽게 밀려들었다.




나는 아쉬움인지 안도인지 모를 짧은 숨을 내뱉으며, 차창에 비친 희미하고 피로한 내 얼굴을 응시했다.

이전 25화부유 (浮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