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 미세하게
점심시간의 카페는 웅성거리는 소음과 들뜬 열기로 포화 상태였다. 나는 직사각형 테이블의 정확히 정중앙에 노트를 펼쳐두고, 종이의 모서리와 테이블의 가장자리가 완벽한 평행을 이루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짧은 안도감을 느꼈다.
시선은 다시 허공으로 향했고,
나는 안전한 진공상태 속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예고도 없이 내 시야각 안으로 낯선 그림자가 쑥 밀고 들어왔다.
"여기, 자리 빈 거죠?"
대답을 채 기다리지도 않은 채, 낯선 여자가 맞은편 의자를 긁으며 빼내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나의 완벽하게 통제된 반경 1미터의 영토가 속수무책으로 침해당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겉면에 물방울이 잔뜩 맺힌 벤티 사이즈의 아이스 음료 컵을 테이블 한가운데에 무심하게 내려놓았다.
탁, 하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컵 표면의 차가운 물방울들이 뭉쳐 바닥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동그란 물자국이 순식간에 테이블 표면을 번들거리며 적셨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테이블의 아주 미세한 경사를 타고, 그 엎질러진 물기가 평행을 맞춰둔 내 노트의 모서리를 향해 서서히, 그러나 집요하게 번져오고 있었다.
1센티미터, 5밀리미터, 3밀리미터.
나는 여자의 얼굴이나 소란스러운 주변의 소음 따위는 완전히 소거한 채, 오직 그 투명한 물길의 끝단만을 강박적으로 노려보았다. 종이에 닿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표면장력.
노트를 뒤로 단 1센티미터만 물리면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재난이었지만, 내 몸은 마치 마취 주사를 맞은 것처럼 굳어 있었다.
지금 저 침범을 피해 내 자리를 좁히는 순간, 간신히 버텨온 내면의 어떤 질서마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결국 첫 번째 물방울이 노트의 메마른 종이 끝에 닿았고, 모서리가 순식간에 회색빛으로 축축하게 변색되어 갔다.
건조하고 완벽했던 관찰자의 세계에, 마침내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눅눅한 현실이 얼룩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