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룽지 Oct 09. 2024

영화 <아노라>, 이름을 짓는다는 것

Anora (2024)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많은 영화 중 가장 기대되었고, 기억에 남았던 작품 중 하나는 <아노라> 였습니다. 이미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아 작품성을 증명해 낸 작품이기 때문에 부산을 찾은 영화팬들의 많은 관심 속에서 상영이 되었어요. 작품을 연출한 션 베이커는 <탠저린>(2015)이나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로 국내에 많이 알려져있죠. 이번 <아노라>에서 그의 연출력이 정점을 찍은 것 같습니다. 


<아노라>는 스트립 댄서로 일하는 ‘애니’가 뉴욕에 여행 온 러시아의 거물급 재벌의 아들 ‘이반’을 우연히 만나며 결혼 하게 되는 이야기 입니다. ‘애니’는 이 모든 것이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네온사인 처럼, 디즈니랜드의 환상처럼 꿈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감정노동을 하며 남자들의 저질스러운 욕망을 풀어주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노동환경 속에서 항상 ‘을’이었던 ‘애니’에게 이 갑작스러운 결혼은 ‘갑’으로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둘도 없는 절호의 기회였거든요.


너무나 다른 사회적 위치를 가진 두 사람이 섞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아노라>는 이런 공존할 수 없는 계급의 벽을 깊숙히 찔러보는 사회드라마 입니다. 그 작은 구멍으로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며 마치 자신 또한 그곳에 있다는 착각을 한 ‘애니’에게는 메울 수 없는 고통만이 남았을지 몰라요. <기생충>(2019)의 기우가 저 아래 반지하 현실을 잠시 외면하고 뒷산에 올라가 멀리서 그 부잣집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오버랩되네요.

아마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맹점은 노력하지 않고 쓸모가 없는 사람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인가? 일 것 같습니다. 성노동자로 일하지 않고 건전한 노동을 성실히만 하여도 생계를 유지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가 직업의 귀천 따위를 신경쓰지 않고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성노동을 하기로 선택한 이유는 그저 편하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서로 보입니다. 그녀에게 도덕적 인식과 책임같은건 찾아볼 수 없죠. 별로 동정이 가지 않죠? 우리에게 ‘애니’는 그저 현실에서는 피하고 싶은 사람일 뿐 입니다.


말마따나 영화를 보다보면 (작중에서도 직접 언급이 되지만) ‘애니’의 모습은 정말 ‘짐승’같아 보입니다. 이성없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모습, 난무하는 더러운 욕설, 지폐 쪼가리 몇 장 얻기위해 자존심도 서슴없이 버리는 단순한 물욕에서의 모습을 보면 말입니다. 바닥에 과자를 흘리면 허겁지겁 줏어먹는 들개처럼요. 


하지만 들개도 걷어차면 아파하고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인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노라>는 변명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사실 ‘좋은 사람’이다 라는 식의 화법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절제할 줄 모르는 이성없는 인물로 묘사한 것이 오히려 그 반대같아요. 그저 ‘애니’도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존재라는 것을 관조할 뿐입니다. 욕망만을 따라가다가 그저 감정을 배설해내는 인간, 이런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어보여요. 


‘애니’의 이름은 사실 ‘아노라’ 입니다. 작 중 본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름의 뜻을 서로에게 물어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노라’라는 이름의 뜻은 빛, 고귀함, 아름다움 등의 뜻이 있어요. 생명에게 이름을 짓는다는 것, 그리고 그 이름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생명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대해 그 정답은 과연 누가 답해줄 수 있을까요.


이성없고 절제할 줄 모르는 존재는 소각장에 폐기처리하듯 모두 사라져야 마땅할 존재일까요? 그렇다면 그것을 구분짓는 최소한의 경계선은 어디일까요. 회색분자같은 저 또한 이 줄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노라>는 정식수입되어 11월 6일 국내개봉합니다. 영화는 매우 선정적이기 때문에 참고하시고요. 화려한 색채의 이미지와 션 베이커의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있는 코미디 장르 영화이기 때문에 웃으며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관람하시면 후회없으실 영화이니 개봉하면 극장에 한 번 가보시길 바래요.





작가의 이전글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군인이 되었습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