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 2ㅡ[일반소설]

이상한 나라로 간 앨리스

by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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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그녀에게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아주고
여자라는 명함을 빼앗아갔다.


어릴때는 여자 나이 마흔이면 그저 완벽한 어른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그건 엄청난 오판이었다. 모든 꿈을 이루고 많은 것들을 손에 쥔채 살아갈 줄 알았는데 인생은 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았다.


그렇게 어느 날, 앨리스는 길을 잃었다.


김지안. 그녀는 오늘도 첫째 아들 승현이의 라이딩을 위해 학원가 사거리 한 구석에서 조용히 정차 중이다. 이곳의 늦은 밤거리는 어쩌면 서울에서 가장 복잡한 도로일지도 모른다.


픽업해서 아이들을 데려가려는 부모님들의 차들로 빼곡하게 메우고 있으며 곳곳에 도로를 통제하는 경찰들과 보안관 아저씨들의 호각소리가 요란하다.


학생들은 저마다 수업을 마치고 각자의 차량으로 올라타거나 우르르 단지 내로 이동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건물마다 학원 간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 안에는 지안의 아들 승현이도 함께 하고 있다.


그녀는 며칠 전부터 지끈거렸던 두통이 더욱 심해짐을 느끼자 서랍에서 바로 두통약 한 알을 꺼내서 물과 함께 삼킨다. 차라리 몸이 아프게 낫지 머리가 아픈 이 고통은 정말 끔찍하리만큼 싫었다.


며칠 전부터 아들 승현이의 영재고 준비로 많은 신경을 썼던 탓인지 바로 몸이 쉬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차량 거울을 슬쩍 내려서 초췌하리만큼 주름진 얼굴을 보면서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1년만 더 버티자.


지안은 차 안 서랍 구석에서 결혼 전에 규호와 함께 작성했던 혼전 계약서를 다시 꺼내서 살펴보았다.


ㅡ20년이 지나면 이 결혼 계약은 종료가 된다. 만약 둘 중 하나라도 더 이상의 결혼 연장을 원하지 않는다면 결혼 이후부터의 증식된 재산의 절반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결혼 계약을 종료시킬 수 있다.


지안의 친정이 찢어지게 가난하고 빚더미에 오른 것을 눈치챈 시어머님은 결혼 초에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요구하셨고 지안 역시 이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강남 토박이었던 규호네 집에서 원했던 건 오직 가문의 대를 이어갈 똘똘한 손주였고, 한국대를 나온 그녀가 적합하다고 판단했기에 그들의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제 3년 후면 남편과의 결혼 재계약 시점이 돌아온다. 물론 처음에는 내 인생에 이혼은 절대 없다는 강한 신념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이 결혼을 유지시키고 남편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며 노력했지만 요즘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아이들 대입이 끝나고 졸혼해서 혼자 행복하게 사는 주변 언니들을 보니 한 사람이랑 평생 살아가는 것이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님을 새삼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제는 시대가 많이 달라져 있었고 이제 이혼은 절대 흠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최근에 태희를 다시 만나면서부터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돌싱으로 돌아온 후에도 아주 멋진 싱글라이프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조금씩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결심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첫 번째 목표는 승현이를 영재고등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이었다. 하루하루를 미션을 수행하듯 아들 승현이의 건강한 독립을 위해 열심히 뒷바라지하고 조용히 기도하며 살고 있다

이제 남은 입시 기간은 넉 달.


그렇게 해야만 둘째 승재 곁에 하루라도 빨리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발달 장애 판정을 받은 승재는 대전에서 친정엄마가 대신 키우고 있다.


곁에 데리고 있으면 첫째 승현이와 지안에게 정서적으로 더 안 좋다는 이유로 남편과 친정엄마가 무작정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그 당시 그녀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었기에 남편의 결정을 그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경제권을 가진 남편은 결혼 후에 더더욱 독재적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승재가 장애 판정을 받은 후로는 더더욱 지안을 하대했다.


본디 타고난 성향이 타인과의 갈등을 썩 좋아하지 않았기에 남편과의 마찰을 최대한 줄이고자 웬만한 일들은 다 맞춰주면서 지내다 보니 남편은 나날이 독불장군으로 변해갔고, 반면 그녀는 점점 그의 이모님 신세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하루 두 끼 밥상을 정갈하게 차려주지만 때로는 폭언을 일삼기도 했고 그녀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그녀는 이제 두 눈과 귀를 닫은 채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가끔은 자신이 등신 머저리 같이 한심하게 느껴져도 참고 또 참으면서 악착같이 이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평범한 부부들이 그러하듯 이미 부부간의 로맨스는 사라진 지 오래며 지금은 아이들 때문에 다소 형식적인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승현이가 무사히 성인이 될 때까지 엄마 아빠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데에만 집중하기로 하면서 서로에 대해서 어떤 기대도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렇게 남편과는 쇼윈도 부부로 살고 있었지만 그에 대해서 엄청난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 정도라도 경제적 환경을 유지하고 승현이를 케어할 수 있었음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었다. 더군다나 어린 시절부터 승현이를 열심히 케어한 덕분에 이 동네에서는 제법 공부 잘하는 아이의 엄마로 통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동네에서 아이를 케어하다 보면 교육 전쟁으로 인해서 결혼생활의 외로움을 채 느낄 새도 없다는 것이었다. 정신없이 승현이를 픽업하다 보면 승재에 대한 걱정도 잠시 잊을 수 있었고, 남편에 대한 불만도 대수롭지 않게 사라지기 때문에 더욱더 부나방처럼 열정적으로 아이 교육에만 집착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 나름의 소박한 행복들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적어도 그녀에게 그런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저작권 등록 완료.

소설 초고 수정중.

300페이지 A5국판 일반현대소설 완료.

묘사 수정중...ㅋㅋㅋㅋ

등장인물은 작가의 순수창작물ㅡ

실존인물 아님ㅡ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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