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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스방 Mar 18. 2024

세상은 크든 작든 서로 돕는 것

쌀쌀한 겨울바람이 채 가시지 않았던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연휴 내내 설날 음식을 먹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가 늘어난 몸무게도 줄일 겸 상큼한 겨울 공기를 맛보러 아내와 막내딸과 함께 시흥 갯골생태공원으로 향했다. 

갯골은 갯벌 사이에 난 물길이라고 하는데 시흥의 갯골은 일반적인 갯벌과 달리 내륙 깊숙이 들어와 있어 다양한 생물군들과 멸종 위기의 야생 동식물들이 서식하는 생태의 보고이다.  

    

“어머 저것 좀 봐요!”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막내딸과 아내를 따라 구불구불한 갯골 길을 한 바퀴 돌고 있을 때 푸른 하늘을 수놓은 기러기 떼를 만났다. 

기러기는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 겨울을 나는데 우리나라에는 10월에 와서 이듬해 3월에 떠난다고 한다. 

기러기 떼가 질서 있게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톰 워삼(Tom Worsham)이 쓴 기러기 이야기가 떠올라서 아내와 막내딸에게 신나게 떠들어댔다.      


기러기는 먹이를 찾아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면서 리더를 중심으로 V자 대형을 그리며 한 번 이동에 40,000km를 날아간다고 한다. 

번갈아 가며 무리의 가장 앞에 날아가는 리더의 날갯짓은 기류에 양력을 만들어 주어 뒤에 따라오는 동료 기러기가 혼자 날 때보다 쉽게 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이들은 먼 길을 날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울음소리를 내는데 그 울음소리는 앞에서 거센 바람을 가르며 힘들게 날아가는 리더에게 보내는 응원의 소리라고 한다. 


만약 어느 한 기러기가 아프거나 지쳐서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면 친구 기러기 두 마리도 함께 대열에서 이탈해 지친 기러기가 원기를 회복해서 다시 날 수 있을 때까지 또는 죽음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친구 기러기의 마지막을 함께 지키다가 무리로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서로 배려하며 협동으로 살아가는 기러기 이야기는 우리의 삶에 큰 가르침을 준다. 

기러기의 생태에서 볼 수 있듯이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세상은 더욱 질서 있는 협력을 통한 공존의 삶이 필요하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인 신협은 ‘신용협동조합’의 준말로 지역, 직업, 종교 등의 유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여 자금을 마련하고 이용하기 위해 조직한 비영리 단체이다. 

예금을 받아 그 돈을 재원으로 하여 대출하는 은행의 역할을 하면서 경영을 통해 얻어지는 이익은 조합원과 지역사회를 위해 돌려주는 착한 금융을 실천하고 있다. 

나는 한동안 신협을 감독하고 지원하는 신협중앙회에서 홍보와 국제업무 책임자로 있으면서 신협의 과거를 반추해 보고 국내 상황과 미국과 유럽의 신협을 보면서 우리나라 신협의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잠시 신협을 떠나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돌아온 직장의 실무책임자로서 내 직장 신협의 참모습을 만들기 위해 더불어 사는 협동의 네트워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선 건강한 먹거리로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고 환경을 지키고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여 협동의 삶을 지향하는 두레생활협동조합(=두레생협)에 회계감사로 참여했다. 

매년 회계를 마감하고 개최하는 정기총회에 앞서 재무제표를 감사하고 총회에 회계 감사보고를 하면서 드문드문 이사회에 참석하여 운영사항을 듣기도 했다.   

   

두레생협 이사회 임원들은 보수도 없이 시간을 쪼개서 지역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 봉사하고 있었다. 

나는 올바른 먹거리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을 도울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판매장 마련 자금이 부족한 그들에게 우리 신협 이사회에 저금리의 자금을 대출하는 안건을 상정해서 승인받았다. 이렇게 지역주민에게 올바른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면서 지역사회를 위해 서로 돕는 협동조합 간에 협동의 첫 단추를 잘 꿰었다.     


이렇게 차츰 지역에서 활동을 넓혀가면서 마을 주치의 병원을 만들고자 하는 여성주의 활동가들을 만났다. 

그들은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살림의사협)을 만들어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기 위한 병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이 스스로 병원을 만들기 위해 출자금을 내서 동네 주치의 병원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두레생협을 도왔던 것처럼 우리 신협 이사회에 지역주민의 건강을 돌보기 위한 평생 주치의 병원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병원 건물을 임차할 저금리의 자금을 대출해 주는 안건을 올렸다.      

이사회에서는 협동조합간에 협동으로 지역사회를 돕는다는 공통된 의견으로 승인을 해주었고 곧바로 병원의 실체를 주민들에게 보여 줄 수 있었다. 

가정의학과로 개원한 병원은 의료진의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성실한 진료가 입소문을 타고 병원을 찾는 주민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나는 이러한 지역사회를 위한 협동의 시너지를 높이기 위해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묶어 내는 협동의 네트워크를 만들어갔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면 건강한 먹거리를 먹어야 하고 경제 활동을 위한 돈도 필요하다. 

여유 있을 때 저축하고 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는 신협, 건강한 먹거리로 건강한 생활을 지키는 두레생협 그리고 항상 주민들 곁에서 주치의로서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지켜주는 살림의사협을 함께 엮어서 협동조합협의회를 만들었다.   

   

지역주민들의 참여로 구성된 각각의 협동조합들은 제각기 가지고 있는 장점으로 서로 돕기 시작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도움은 서로 협력해야 할 협동조합의 방식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가장 많은 조합원이 있는 신협은 조합원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위한 두레생협 이용과 진정한 진료를 실천하는 살림의사협의 살림의원을 소개하며 도왔다. 

두레생협과 살림의사협은 신협을 통해서 금융거래를 하면서 그들의 운영자금을 맡겨주었다.      


크든 작든 서로가 돕는 마음으로 협력하면서 각 협동조합 임직원들은 퇴근 후 저녁 시간에 함께 모여서 협동조합 학교를 열어 협동의 삶을 공감해 나갔다. 

이렇게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고 자기의 분야에서 지역사회의 선한 역할을 도모하면서 서로 도우며 협동의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협동의 범위를 넓혀갔다. 

서로 잘 알고 서로 신뢰하면서 우리 동네에 필요한 일들을 찾아내서 협동의 방식으로 풀어나갔다.      


해를 거듭하면서 뜻을 같이하는 협동조합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태양으로부터 무한한 자연의 에너지를 얻어내는 태양과 바람에너지협동조합과 새로운 형태의 주민참여형 도서관을 경험하는 도서관마을협동조합이 함께했다. 

여기에 도시에서 농촌을 경험하며 무공해 농산물을 스스로 만드는 우리 동네텃밭협동조합과 아이들의 꿈과 미래를 마음껏 펼치도록 부모들이 직접 운영하는 소리나는 어린이집협동조합이 참여했다. 

이와 더불어 지역사회 문화공동체를 지향하는 문화예술사회적협동조합인 자바르떼와 다양한 지역사회의 여론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지역 정론지로서 시민신문협동조합이 협동조합협의회의 구성원으로 참가하였다.      

이로써 협동조합협의회는 지역사회에서 제각각의 역할을 하면서 지역사회에 건강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협동의 나무로 은평지역에서 협동의 숲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이러한 일들을 함께하면서 동네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협력을 통해 이를 올바르게 만들어가는 협동의 울타리가 더욱 튼튼해지도록 묶어나가고 있다.   

        

내가 있는 신협은 6.25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던 1960년대에 시대적 어려움에서 지역사회를 돕는 일들을 위해 금융과 복지를 접목시켰다. 

금융사업에서 얻어지는 이익을 지역사회를 위해 쓰면서 동네 골목에 노인정과 유아원도 만들고 주민들의 생활과 문화 편익시설도 만들어서 지역사회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왔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복지보다는 절박한 가난을 이기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런 시대적 상황에서 나라가 할 수 없었던 복지의 틈을 작게나마 신협이 메꾸어 왔다. 


그렇지만 이제는 국민들이 이루어낸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과 함께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나라의 복지정책이 국민편익을 위한 시설 확충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기초 생활 환경을 돕는 복지제도로 넓혀가고 있다.      

나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서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내 직장 신협의 역할을 생각했다.


금융협동조합으로서 수익의 창출과 그 이윤의 공정한 분배를 통해 사람 중심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함께 호흡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은 서로의 도움으로 얽힌 협동조합들이 지역사회에서 각자의 역할을 잘해나가면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도우면서 사람 중심의 금융을 잘 경영해서 이익을 지역사회에 돌려주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다행히도 우리 동네는 사회적 경제 생태계의 뿌리가 잘 내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보다 협동의 삶이 앞선 캐나다나 유럽의 협동조합들처럼 내 직장 신협이 협동조합 간의 협동을 잘 이끌고 지탱해 나갈 수 있다.      


기러기들이 질서 속에 서로 협동하여 살아가며 공동체를 견고하게 지켜가듯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함께 행동하는 협동이야말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삶의 모습일 것이다. 

갯골의 갈대숲 위로 무리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들의 힘찬 날갯짓을 보며 다시 한번 협동의 삶이 왜 아름다운지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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