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구와 인간 Jul 28. 2023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당구장에서 ~ 39

*“푸른 보료에 부듸치는 히고 불근 왕구슬” **“고굴러가는 맵시라니 얌전한 색시걸음보다도 더 밉쌍이로구나.”


이 땅에 들어올 무렵부터 사람들을 홀리기에 주저함이 없었던 당구. 끈끈한 원동력은 도시가 채 생성되기도 전에 당구장이 먼저 들어서는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도시의 생동감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한 군데로 부족한지 주위에 또 만들어지고 있다. 치열한 경쟁으로 뒤처진 곳은 나자빠지고 또 생기고를 반복하는 당구장업의 생리.


선배가 잠깐 얘기 좀 하잔다. 진지한 표정이다. 당구장 차릴 계획이라며 자리도 벌써 물색해뒀다고 한다. 일단 어딘지 보고 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모든 장사는 자리가 좋아야 한다. 특히 당구장은 더 그렇다. 둘러보니 아니길래 단호하게 잘라버렸다. 의아해하는 모습이다. 뻔히 망가지는 것을 볼 수 없어 한마디 더 거들어보지만 먹혀들지 않는다. '저는 분명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돈 한 번 벌어보자."라는 소리에 더더욱 말렸건만.


당구장은 돈 버는 장사가 아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생계형 창업으로 '밥은 먹고 산다.' 딱 이 표현이 잘 들어맞는다. 사람들은 단순히 공 건네주고 청소만 하는 아주 간단한 일처럼 생각한다. 단골만 많으면 돈이 절로 들어오는 것처럼 느끼면서 말이다. 계산기로 두들겨보면 떼돈 버는 퍼즐도 맞춰지기에 의욕이 앞설만도 하다. 이때는 제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는 일이 된다.


누가 당구장을 창업할까. 당구발전에 포획된 자아들이 대부분이다. 늘어나는 실력만큼이나 세상과의 벽이 높아지는 것을 모른다. 아는 것이라곤 당구밖에 없다. 그들만의 인맥과 계산법으로 당당하게 창업하여 시원하게 말아먹는 일만 남게 된다. 세월이 정답을 말해주지만 이미 늦어버린 세월 속에 한탄하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당구뿐만 아니다.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 자빠지는 모습은 언제부터인가 매체의 단골 메뉴가 되어버렸다.


요즘은 당구장도 대대전용구장으로 꾸며야 한다. 초기비용도 예전 같지 않아 투자한 만큼 이익이 보장되지 않을뿐더러 그나마 망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선수와 전문가들은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지만 내가 배운 도둑질을 차마 버리지는 못한다. 꿈나무들이 자라나기에 밑밥을 던지면 물고기가 여지없이 물어버린다. 원청업체와의 공생관계 때문에라도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안타깝지만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당구 정치와 재료상은 국가의 정경유착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당구발전을 부르짖는 일이다. 깃발을 휘날리며 상패와 상금을 하사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많이 팔아먹으면 장땡이다. 자영업자들이 망해 자빠지는 모습은 관심에도 없다. 발전을 외치기만 하면 그냥 자동적이다. 그 속에 내가 포함되어 오늘도 창업 내일도 창업 허무한 인생의 시간과 돈이 날아간다.


"당구 시장은 5년마다 물갈이된다." 대를 잇는 어느 재료 상인의 소리다. 실제 같은 건물 같은 자리에서 사라지고 나타나고를 반복하기도 한다. 프로당구도 출범 5년째를 맞이했다. 5년이란 숫자가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진 아무도 모른다. 어쨌거나 정신없이 생겨나더니 이제 거의 정점을 찍는 모습이다.


올림픽공원 남문 근처 지하에 중국집이 있다. 맛이 고만고만한데 항상 이곳만을 고집한다. 오래전부터 재료 상인들이 모이던 곳이기 때문이다. 짜장면을 먹으면서 말문을 열었다. '100년을 훌쩍 넘겨버린 당구 역사 그 많은 당구대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두어 번 후루룩! 소리를 내더니 "나도 모른다." 며 후루룩! 후루룩!


한편으로는 프로당구가 큰일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원청업체의 후원으로 명맥을 이어오던 당구가 큰 기업체의 합류로 광고 수익을 창출하고 다. 상위 1%에서 조금 나아진 것밖에 없는 미미한 영향력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당구문화는 판이해졌다. 당구만 잘 친다면야 먹고사는 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상인들에게 고개 숙일 필요가 없어졌다. 성장할 수 있는 인적자원까지 제공되기에 이제는 당연한 발전의 외침을 거부해도 되지 않을까.




*조선일보(1939.4.27.) 칼럼에서 문구를 그대로 인용했다.

**동아일보(1956.8.27.) 칼럼에서 문구를 그대로 인용했으며 당구장에서 짜장면을 즐기는 풍습이 최초로 확인된다.   

작가의 이전글 만들어진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