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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Nov 15. 2023

당구밖 과수원길

당구장에서 ~ 48

"내가 왜 당구를 배웠는지 모르겠다." PBA에서 활동하는 노장의 푸념이다. 한동안 뜸했던 친구가 나타나서 다른 일로 돈 번다고 자랑해 버린 것이었다. 지금은 운영하던 당구장도 접은 지 오래다. 시합에 매진한다지만 이렇다 할 성적도 나오지 않는다. 처자식을 어찌 먹여 살리는지, 생활이 오죽하겠나 싶다. 어쨌든 우승해야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직업 '당구선수.'


프로와 아마 통틀어 활동하는 사람들은 거의 천 명에 육박한다. 이뿐이 아니다. 꿈을 먹고 훈련에 매진하는 이들도 셀 수 없을 정도다. 공인된 선수들에게 훈련보조금을 지급한다지만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그나마 내주머니에 돈이 있다면 창업시장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 차려 놓으면 다 될 것 같은 장사처럼 보이지만 착각을 인지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명색이 선수라는 타이틀도 무색할 정도로 경쟁이 심하기 때문이다. 전국에 만 오천여 개를 유지하는 당구장업이지만 소리소문 없이 뜯어지고 생기고를 반복하는 현실이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손님 없어 내가 망하면 그만인데 남에게 폐 끼치는 경우가 발생할까 우려스럽다. '당구 강습' '원 포인트 레슨'등 초보들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쳐야 내 이익을 탐할 수 있는 장사이기에 별다른 영업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배우겠다는 이들에게 강습비를 받기도 한다. 이에 이견을 달 이유는 없다. 제대로 가르칠 수 있냐를 묻고 싶은 거다. '당구는 제대로 배워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특정 선수의 동경이 앞서기에 침범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한 번 맛 들이면 평생을 쳐야 하는 3쿠션 세상, 더구나 선수가 꿈이라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올해도 대한당구연맹은 열일하고 있다. 대한체육회에서도 거들며 흥행을 몰아간다. "유청소년. KBF 새싹 발굴 전국 청소년 당구대회" 교육부마저 연맹과 손잡자, 중 · 고등학교는 앞다투어 당구교육 활성화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심지어 초등학교까지 영역을 확대한다고 한다. 매체는 배턴을 이어받는다. 영웅을 만들어야 먹고사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그들이 한 아이의 미래를 책임지지는 못한다. 그저 제 밥그릇 챙기며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할 뿐이다.


오늘도 꿈나무들은 자라난다. 당구공에 현혹되어 너도나도 앞다퉈 큐를 손에 쥐고 있다. 0.1%의 확률에 목메며 살아가는 당구쟁이의 삶을 알기나 할까. 어른들도 멋모르며 부추긴다. 뭐든지 한 가지만 잘하면 굶어 죽지 않는다면서. 눈떠보니 서울역의 노숙자도 밥은 먹고살더라. 때로는 고깃국물도 먹는다고 한다. 어느 방향이 제 길인지 아무도 모른다. 살아보고 늙어봐야 알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확률로도 당구밖 과수원길 같은데 이 또한 고집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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