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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Nov 12. 2023

신의 반칙

당구장에서 ~ 47

당구는 분명 신의 영역이 있는 것 같다. 세계 최고의 저격수 '야스퍼스'가 제나라 '베겔 3쿠션 당구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50점 시합에서 에버리지가 무려 '4.166' 신의 영역을 벗어난 수치다. 상대선수였던 독일의 마틴혼이 2점대로 따라가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도 어이없었던지 수시로 미소 짓는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경기 끝난 후 야스퍼스의 득점영상을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실수한 포지션은 아슬아슬하게 적구를 비켜나간 것뿐이었다. 거의 모든 포지션을 완벽하게 풀어낸 셈이다.


여태껏 에버 3점대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한계점이라 자신했다. 목표를 세워 놓고 열심히 달려왔건만 나를 맥없게 만드는 야스퍼스 당신은 정녕 신이란 말인가. 사람이 해낼 수 없는 일을 직접 눈으로 겪었으니 믿지 못할 광경도 아니었다. 분명 기량 하나로 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정신력이 보태져야 하지 않을까. 실력은 둘째 치더라도 신들린 스트로크는 도대체 어디서 분출하는 것인지, 그 고민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일상의 연속이다.


한 큐 한 큐 혼을 담은 모습에서 살기를 느끼게 한다. 내가 급소를 찌르지 못하면 상대의 창이 내 급소를 향해버린다. 한 치 오차도 없이 찔러야만 숨통을 조일 수 있다. 빗맞으면 내가 당한다. 누가 먼저 50번을 정확히 찌르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라지는 냉정한 승부의 끝자락, 비릿한 피내음에 코끝마저 실룩거린다. 매서운 눈빛으로 무장한 승부근성에서 침략의 흔적이 엿보이는 것은 왜일까.


UMB주관의 월드컵과 PBA 프로당구에서 단연 돋보이는 선수들이 있다. 이들 국적 대부분이 유럽이며 그중 서유럽 사람들이 좀 더 눈에 띈다. 후자의 공통점은 대항해시대를 개척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칼을 먼저 들었다는 이유로 당구 잘 친다는 결론이 성립되는 아이러니함이 성립된다. 은과 도자기 · 설탕 · 차 · 향신료를 독점하기 위해 대양을 가른 문명의 변곡점. 이미 정화의 함대가 바다의 주인임을 알렸다지만 뒤바뀐 문명의 원동력은 야만성에 손을 들어줬다. 그 과정에서 광물학에 눈 돌린 유럽에 의해 지축이 흔들렸고 당구도 문명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버린 배경이다.


영국은 가장 많은 식민지를 개척한 나라다. 한국의 프로당구가 탄생하기 전 영국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당구는 좋지 않은 이미지다. 너희 나라는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말이다. 돌아오는 답변은 아주 긍정적이었다. 훌륭한 스포츠라는 것이다. 물론 영국당구는 3쿠션이 아닌 스누커 종목이다. 독보적으로 고집하는 단서를 찾지 못했지만 너와 다르다는 소리로 이해해 버렸다. 스누커와 포켓을 결합시켜 만든 중국의 "헤이볼"종목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상금을 내걸며 원조임을 상징하는 듯하다.


너와 다름은 3쿠션 종목에서도 엿볼 수 있다. 모든 이에 사랑받았지만 귀족 손에서 좀 더 자랑하게 된 모양새다.* 문명화놀이에 합류한 당구는 과거의 너와 다른 나를 상징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비넥타이에 가려진 야만성을 뒤로한 채 오늘도 진화하고 있는 당구라는 스포츠. 왜 신사도를 앞세웠는지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된다. 바이킹의 후예들 · 해적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 럭비의 기원 · 무적함대 · 등 침략을 빌미로 당구가 성장해 온 사실을 부인할 수 있을까.


어쨌든 지구는 숨 쉴 시간이 주어지지 못한 채 이미 먼 곳까지 온 듯하다. 함대가 바다를 가르는 것도 모자라 우주선이 앞다투며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오늘도 총소리는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다. 백여 개의 원소를 모두 다 써버리며 로봇이 은하계를 개척한다지만 이를 두고 문명의 진화가 불멸할 것이라고 믿어야 할지. 지금은 카오스를 넘어 우주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세상이다. 당구 실력도 톱텐 선수들에게는 코스모스와 같지 않을까. 비록 신계의 반칙일지라도.


만들어진 시간 속에서 사회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공간 속에 갇혀 관계의 연속선에 놓인 우리. 의도된 시간의 틈새마다 무의식적으로 창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해 버렸다. 나와 내 가족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신의 반칙이 허용되는 세상 속에서 의식적인 상상을 실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와 다른 네 주머니가 나와 같다는 것을 깨우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중세 '마창대회'에서 당구의 기원과 흐름을 가늠해 본다. 기사들의 혈투로 공국의 안정화. 찌르는 본능을 관객들이 소화시킨다. 놀이문화의 탄생. 그들의 생활 속에 당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 일자리를 잃은 기사들이 당구를 즐겼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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