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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지 Apr 20. 2024

영유, 보낼걸 그랬다

* 아래글은 자녀 ‘교육’이 아니라 ’입시‘에 관한 내용임



나로 말하자면 엉겁결에 “입시에서 퇴출” 당한 케이스인데, 그 시작은 아마도 아이를 “영유”에 안보내기로 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입시의 첫 단추부터 살짝 빗나갔던 것이다.


요즘처럼 기저귀 떼자마자 레테 과외 붙여서 4세 때 유명 영유 들여보내고, 초1 때부터 대치동 영어학원 라이드하던 시절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당시에도 영어교육 열풍이 거셌고, 나 역시 관심이 많았다. 기저귀 뗀 아이 문센 ‘노부영’ 강좌 데리고 다니고, 7세쯤 되어서는 1년이라도 영유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나였다.



그런데 영유를 왜 안보냈나?


1. 영어 몇 마디 가르치려고 1-2백만원을 들이는 건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더 비쌈)

- 영유 통해 얻는 것을 단지 '영어'로 한정지어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영유 비용에는 ‘입시 top 시스템 안에 들어가기 위한 티켓값도 포함되어 있었다.


2. 영어책 읽어주고 원어 CD를 듣게하면, "엄마표"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 엄마표를 지속할 "나"의 끈기와 체력을 과신했다.


3. 회사 어린이집 보낼 기회를 포기하기 아까웠다.

- 선생님도 좋고, 시설도 좋고, 가성비가 좋았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자라 늘 가성비를 따지며 공부해왔다. 사교육은 방학 때 대치동 단과학원 다닌 게 다였고, <수학의 정석>이나 <성문종합영어>, <EBS 교재> 등은 언니들한테 물려받아 공부했다.

(나름 이득을 볼 때도 있었다. 책이 개편되면서 사라진 문제들을 선생님들이 가끔 시험에 냈는데, 개편 전 버전으로 공부한 덕분에 풀 수 있었다.)


그러던 내가 최근 몇 년 방학 때마다 ㅇ백만원 뭉치돈을 내고 사교육을 시키게 될 줄이야!


지금까지 미뤄온 사교육비 청구서를 한꺼번에 받는 기분이었다.




영유를 안보내기로 결심한 나는 아이 6세 때부터 매일 20분 정도 시간을 들여 영어책을 읽어주고, 따라 읽도록 시켰다.


영어책은 그림책/리더스북, 챕터북, 소설 순으로 읽게 되는데, 아이는 간단한 문장 6-7개로 이뤄진 얇은 리더스북을 매주 2권씩 외웠고, 6개월이 지나자 약 50여 권을 달달 외우는 아웃풋을 보여주었다.



와우, 천재인가?


이렇게만 하면 엄마표 영어로도 문제없겠다~ 싶었다. 아이도 나름 성취감을 느끼며 좋아했다. (책값은 좀 많이 들었다..ㅠ)


나의 목표는 아이가 해리포터 수준의 책을 즐겨 읽고, 원어 CD를 들으며 잠드는 것이었다. 아마도 모든 엄마들의 로망일 듯.


그런데 한참 잘 진행되던 엄마표 영어는 둘째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아쉽게도 중단되었다. 둘째가 태어난 후 '하루 20분 영어공부'를 지키기 어려워졌고, 아이는 6세 때 달달 외우던 영어책 50여 권을 정말 6개월 만에 싸그리 까먹었다.


얼마 지나자 자기가 한 때 영어 책을 외웠다는 사실까지 잊어버렸다..!


이후 가끔 영어책을 들이밀어 보았지만, 아이는 이미 흥미를 잃은 상태였고 영어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엄마표로는 안되겠어.


여기 저기 알아보다가 유명 방문 영어수업을 신청했다.

역시 간단한 문장으로 이뤄진 책을 통째로 외우는 방식으로, 엄마표 영어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선생님이 방문해 10분 수업을 해주시고 간 후 그 책을 익히고 외우게 하는 일은 엄마의 몫이었다.


처음에는 신나서 하던 아이는 3주 지나니 시들해졌고, 4주쯤 되어서 좀 어려운 단어, 문장 나오니 흥미를 잃고 말았다. 결국 2달도 안되어 끊었다.


또 다시 방치상태. 아이 영어 공부는 어린이집에서 배우는 영어동요가 전부였다.


알파벳도 모르는 까막눈으로 학군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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