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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지 Oct 27. 2024

마 여사님은 왜 쉬지않고 김치를 만드실까?

오늘은 비도 오고 날씨가 꿀꿀해서

집에 하루종일 누워있다가

에이, 이래선 안되겠다~

슈퍼에 가서 총각무를 잔뜩 사다가

총각김치를 만들었지.

이따가 퇴근길에 들러 가져가


오늘 아침에 수영장 다녀오는 길에

슈퍼에 들렀는데,

어머, 오이를 싸게 파는거야~

그래서 오이를 50개 사다가

오이소박이를 만들었지,

하루종일 만들고 이제 좀 쉬는거야.

오이소박이 엄~청 맛있게 됐는데,

안가지고 갈래?


요며칠 파무침이 먹고 싶어서

파 사다가 잔뜩해서 형님들 조금씩 나눠주고

나 먹을만치만 남겨뒀지. 파김치 자네 것도

한통 싸놓았는데 언제 들러 가져갈꺼야?




늘 나의 발걸음을 유혹하는 마 여사님의 무기는 다름아닌 '김치'다.  강남 다가구주택 건물주인 마 여사님은 혼자 사시면서도 누가 오남매 키운 엄마 아니랄까봐 무슨 김치를 그렇게 통크게 만드시는지, 매일 잠시도 쉴 틈이 없으시다.  


오늘은 깍두기, 내일은 겉절이,

그 담엔 열무김치, 오이지, 무말랭이...

마 여사님의 김치 레파토리는 끊이지 않는다.


그렇게 만든 김치를 남들 싸서 나눠주느라고 마 여사님네 김치통은 언제나 부족한 까닭에, 나는 본죽을 시켜먹은 날이면 늘 플라스틱통들을 잘 씻어서 모아두었다가 마 여사님께 갖다드리곤 했다.




또 김치 받아왔어?

에휴, 아이들 잘 먹지도 않는데..

냉장고 자리도 꽉찼고.


양손에 마 여사님께 받아온 김치통을 가득 든 채 퇴근한 나를 보며 남편이 한소리 한다. 하긴 우리집 아이들은 김치를 잘 안먹는 편이다. 먹어도 어쩌다 한입?


요즘 마 여사님은 나이가 드셔서 그런지 냄새도 잘 못 맡으시는데다가 혼자서 맛도 안보시고 막 만드실 때도 많아(^^), 김치가 가끔은 짜기도 하고 가끔은 싱겁기도 하다. 맛을 귀신같이 판별하는 남편과 아이들은 맛있게 잘 된 김치는 금방 먹어치우지만, 조금이라도 짜거나 싱거운 김치는 손도 대지 않는다.


나 혼자 열심히 꺼내어 먹어보지만 먹어봤자 하루에 저녁 한끼 집에서 먹는 나인지라, 마 여사님이 해주신 김치는 냉장고 한구석에서 푹푹 익어가는 실정이다. (쉿~ 마 여사님께는 비밀이다...)





얼마 전 밀리의 서재에서 <H마트에서 울다> 오디오북을 들었다. 저자는 음식으로 돌아가신 엄마를 추억한다. 엄마가 종이스푼 접어서 먹는 법을 알려주시던 조리퐁 과자며, 델 정도로 뜨겁지 않으면 안먹느니만 못하다고 하시던 찌개나 전골 등...음식은 엄마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이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사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나는 여전히 한국인이긴 한걸까?



잠시 해외에 나와있는데, 시큼하게 익은 파김치가 미치도록 먹고 싶다. 파김치를 떠올리면 오늘도 또 어떤 김치를 만들고 계실 마 여사님이 자동소환된다.


나 역시 마 여사님을 '김치'로 기억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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