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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아라 May 05. 2024

어는점 : 보험 없이 독일 병원 가기

온 지 3주만에 보험도 없는데 허리를 다치다. 

입독 한 지 3주 정도가 되었다. 비가 오는 날 다니엘과 함께 올덴부르크 박물관에 가던 중 버스에서 아주 세게 넘어졌다. 별이 반짝 보일 만큼 심하게 미끄러졌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일으키고자 다가왔다. 부끄러움이 고통 보다 더한 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났다. 그런데 내 엉덩이 뼈는 심상치 않았다. 다니엘은 바로 응급실 방문을 권유했지만 엉덩방아로 응급실에 간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걷을 수 있으니 뼈는 부러지지 않았고 병원에 간다면 엑스레이를 찍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병원에 가길 망설인 가장 큰 이유는

"나는 공보험을 활성화 하지 않았다." 는 점이다. 


넘어지고 다니엘이 병원을 제안한 직후에는 곧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덜렁거리는 나에게 넘어지는 일은 꽤 흔했기에 이 또한 대수롭지 않은 넘어짐이될 것이라는 예상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 엉덩방아는 매우 심각했다. 시간이 지나니 걷기 조차 힘겨웠다. 


입독 후 이렇게 빠르게 다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미리 보험을 활성화하지 않고 행정처리를 차일피일 미룬 

과거의 내가 통탄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엉덩이를 부여잡고 컴퓨터 앞에 앉아 공보험(TK) 서류를 제출했다. 그러나 서류 승인, 우편 받기, 카드 발급 단계까지... 언제가 될 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일요일 밤 10시, 허리 통증은 버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간신히 꺼낸 요거트를 떨어뜨렸는데 

그마저도 줍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보험 없이 비용을 감수하자는 생각으로 여러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여러 병원에 전화해 봐도 홈닥터에게 요청하라고 하거나 지금 위급한 것이 아니면 병원에 와도 치료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독일 병원은 진료를 위해서는 테아민을 잡아야 하는데 이는 2주 후 , 3주 후 정도가 될 수 있다. 어플을 통해 테아민을 확인했지만 더욱이 정형외과는 예약일이 다 차서 캘린더가 활성화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아픈 것도 미리 생각하고 예약을 잡아야 하는 건가! 철저한 독일이 조금은 야속하게 느껴졌다. 


허리가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그 순간 크게 들었다.


올덴부르크에 도착한 순간부터 각종 행정절차까지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나는 독일에 도착해 새로운 상황들을 지면할 때  나는 작은 존재구나 싶었다. 이를 처음 느꼈을 작아지기 보다는 세상은 넓고, 나는 작은 존재이기에 모를 밖에 없으니 물어보면 되지 정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묻고 챙김받고 있다고 느껴지니 조금씩 아무것도 못하는 나를 보게 되었다. 


한국에서 부모님의 보호를 받고 살다가 외국에서는 다른 친구들에게 기대어 살고 있는 내가 제법 별로라는 생각이 크게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독일 사람들에게 같이 놀고 싶은 친구가 되고 싶지, 챙겨줘야 하는 외국인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 병원은 거창한 나의 다짐에도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난관이었다. 병원과의 계속되는 전화 연결 후 결국 나는 내 버디 레오에게 다친 사실을 말했다. 고맙게도 그녀는 한달음에 병원에 같이 가자고 해주었다. 


여기서 한 가지 팁,   병원에 가야 한다면 전화하지 말고 바로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 


독일 병원은 그 어떠한 의사도 환자의 몸상태를 보지 않고 예약을 잡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모든 독일 친구들은 나에게 일단 병원에 바로 가보는 방법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다음 날 나는 버디 레오와 함께 응급실에 방문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말자. 응급실이라는 단어가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무시무시해보일 수 있지만 독일의 응급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병원과도 같은 분위기였다. 예약없이 왔기에 오래 기다릴 수는 있어도 아예 돌려보내지는 않는다. 돌려보낼 지라도 근처 다른 병원에 가면 된다. 첫 번째 병원은 치료 받을 수 없다며 다른 병원을 알려주었고 가까워 걸어서 이동하였다. 


나는 공보험 서류를 어제 밤에 업로드 했고, 승인도, 카드도 없는 상태였다. 

우선 가지고 온 것은 한국에서 독일 비자를 받기 위해 준비했던 TK 가입(공보험) 문서였다. 

가입 문서만으로 치료를 받았다는 사례를 본 적이 없어 적용이 안 될 것을 감수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서류 속에는 학기 시작인 4월1일이 명시되어 있었고 병원 방문 날짜는 그 전날이었기에 불가능하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지.  여권과 가입 문서를 당당하게 내밀었더니 직원은 이를 대조 후 바로 절차를 진행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큰 문제 없이 진료를 대기할 수 있었다. 이게 되는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독일 친구 레오가 빠르게 번역하고 상황을 이야기 해준 것도 한몫했다고 느낀다. 



그 다음 단계는 대기 시간이었다. 예약 없이 병원에 왔다면 4~5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레오는 이미 대기 시간 동안 해야할 과제를 위해 노트북을 챙겨왔다. 그만큼 당연하게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레오도 응급실에 왔을 때 진료를 기다리며 생일을 맞이 했다고 하며 서로 웃었다. 




대기 시간 동안 레오는 <미술 수업의 중요성>에 대한 에세이를 써야 했고 그렇게 우리는 대기 시간 동안 해맑게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한국의 중학교, 고등학교의  미술 수업 시간은 국, 영, 수와 같은 대입 중요 과목 때문에 경시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어릴 적 했던 미술 시간 과제들, 미술 수업 점수의 중요성, 학생부 면접에서 들었던 질문들까지 공유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주로 학생들에게 예체능 과목은 수능 때문에 후순위로 밀려 흔하게 자습 시간이 되는 경우가 많고, 미술 선생님들도 수업 시간을 거리낌 없이 자습시간으로 준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내 버디는 다소 씁쓸한 현실이라는 이야기를 건냈다. 


나 또한 돌이켜 보면 어릴 적 색종이, 물감, 클레이, 파스텔을 참 좋아했었다. 그러나 커 가면서 예고, 예술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게 아니고서야 미술을 즐길 여유도, 이유도 굳이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열정적으로 미술을 가르치고자 하는 선생님이 있으면 부담스러웠다. 미술, 음악, 체육 시간이 될 때 쯤에는 자습 시간을 줘 밀린 숙제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 생각났다. 


학생부 종합 전형이었던 나로서 예체능 과목은 그저 면접관들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성실함이면 되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인하대 면접 이야기를 해주었다. 레오는 작년 인하대학교 교환학생이었기에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 30장이 넘는 서류 속에 굳이 굳이 한권을 찝어서 내용과 느낀 점을 이야기해라 했다는 에피소드, 무엇보다 나를 탐탁치 않게 보며 질문했던 인하대 교수님이 높은 점수를 줘서 합격 시켜줬다는 후일담을 공유하며 깔깔 대며 웃었다. 


2시간 반 정도가 지나니 운강, 운공 이라는 부름이 들렸다. 나는 신기한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내 허리 부분 여러군데를 통통 치더니 엑스레이실로 안내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기다리니 나에게 다시 종이를 건네 주었다. 종이의 내용은 <뼈에 문제 없음> 이었다. 


그렇게 의사 선생님께서는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고 약국에서 약을 사 먹으라는 조언을 해주신 뒤 쿨하게 사라지셨다. 나는 의사 선생님의 뒷 모습에 대고 Tschüss (잘 가!) 라고 인사했다. 


엥? 이라는 감정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약국에서 약을 사 먹으라니! 

처방전 있는 약이 아닌 한국으로 치면 타이레놀인 진통제인 독일 IBUBETA 추천 받고 나의 독일 병원 방문기는 끝이 났다. 




주사라도 맞으라고 안 부르시나 하고 두리번 거렸지만 그렇게 우리는 병원 문 밖으로 나왔다. 

진료비 또한 보험으로 진행되어 따로 계산을 할 필요가 없었다. 보험이 된 것에 대해 신기하기도 하고 병원을 가기 위한 지난밤의 고생들에 비해 슴슴하게 끝난 병원 진료가 유머러스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 후에 상태는? 약을 먹고 나니 확실히 진통이 덜 했다.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괜찮아졌고 

다친 지 2주가 지난 지금 여전히 진통제를 먹긴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독일 약이 좋은 건 쿨한 진료 방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경험한 독일의 병원 시스템은 확실히 위급하고 중증인 환자들에게 배치되어 의사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고 느꼈다. 


확실한 것은 한국 병원의 빠른 진료와 처방전, 의사 선생님의 관심은 큰 강점이다. 

그러나 중증으로 가게 되면 독일의 공보험, 사보험, 그리고 복지 혜택이 더 뛰어날 것이다. 


그렇게 나의 독일 병원 방문기를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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