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워하면 지는 거라는 말이 있다. 난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괜히 자격지심 같고 남이 부럽다고 느껴지면 나의 자존감이 낮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미국에서 멋있다고 느낀 친구들이 었었다. (난 학교를 일 년 늦게 들어갔기 때문에 그중 대부분은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었다.) 몇 년간 친구들을 관찰해 보니 내가 어떤 포인트에서 멋있다고 느꼈는지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난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누가 날 찾는다면 도와줄 준비는 항상 되어있다. 미국에선 그룹단위 프로젝트를 내주면 같이 만들어 발표하는 과제가 자주 있었다 (특히 영어와 역사에 이런 과제가 많았다.) 조는 랜덤으로 조원들 중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부터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친구들까지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었다. 11학년 미국의 역사시간, 선생님은 우리에게 미국 대공황당시 활동했던 마피아 보스들에 관한 그룹 프레젠테이션을 내주셨다. 우리 조에는 여섯 명의 남자애들로 구성되었다. (랜덤으로 이렇게 걸리기도 쉽지 않다) 나 포함 세 명은 스포츠를 하는 친구들, 컴퓨터광 친구 한 명, 조용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 한 명, 그리고 오래된 자동차 수집광인 친구 한 명으로 이루어졌다. 우린 책상에 둘러앉아 누가 어느 부분을 맡을지 결정해야 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중 학교 미식축구팀 캡틴을 맡고 있는 D가 조용히 구글 문서에 모두를 초대하고 발표해야 할 부분을 여섯 목차로 나눠 각자 누가 어떤 파트를 맡을지 의견을 물어보고 조율했다. 덕분에 우리는 탈 없이 각자 준비한 슬라이드로 발표를 하며 좋은 점수를 받았다. D가 없었다면 우린 분명 발표시간 전까지 누가 어떤 내용을 이야기할지 헤매었을 것이다. 부드럽지만 힘 있는 목소리, 정확한 목적과 동기, 모두를 한 방에 단합시키는 아우라. D가 왜 학교 미식축구팀 주장인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너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줘. 부모, 연인, 혹은 친구로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나의 성장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친구들의 부모님들은 자녀가 하기 싫은 것이 있다면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가르친다. 그 덕인가? 낙제하기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서 찍는 운동부 친구들, 항상 조용한 줄만 알았는데 무대 위에선 다른 사람이 되는 연기자 친구들, 아마존에서 각기 부품들을 구입해 직접 테이저건을 만든 친구 등, 학교가 세상의 축소판 같았다.
그중 나의 눈에 띄었던 친구들은 지역에서 농구를 제일 잘하는데 성적도 좋고, 성격까지 존경스러웠던 E, 좋은 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어려운 수업들로만 시간표를 채워놓고, 스포츠, 튜터링, 디베이트에, 여러 클럽의 리더로 활동하던 J. 이 친구들은 자기 주도적으로 본인의 스케줄을 힘들게 만들면서 불평하지 않고 책임감있게 모든 것들을 끝냈다. 시간관리의 괴물들이었다. 학교에선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운동으로 단련된 체력도 괴물들이었다. 이들을 보며, 나도 노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친구들이었다.
12학년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나는 여태까지 살아왔던 삶을 정리하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을 했었다. (미국에선 대학입시에 성적뿐만 아니라 과외활동도 매우 중요하다.) 절망스러운 결론이 나왔다. 난 하나를 완벽하게 한 적이 없었다. 운동이면 운동, 음악이면 음악, 공부면 공부, 팔방미인이 되려고 노력했는데, 돌아온 건 뚜렷한 장점이 하나 없는, 대학교 입장에선 그다지 매력이 없는 학생이었따.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잘하고 싶어 했던 욕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직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중이었던 걸까. 아마 전자일 것이다.
미국에서 만난 친구들 중엔, 한 분야를 어릴 때부터 깊게 파고 노력해 남들보다 훨씬 뛰어난 성과를 보였던 친구들이 있었다. 같은 Welding(용접) 수업을 들었던 순수하고 조용했던 VG는 사실 알고 보니 우리 지역에서 배구를 가장 잘하는 학생이었다. 그 조용했던 내 옆자리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코트 위에서는 스파이크를 꽂으며 날아다녔다. 후에 물어보니 그 친구는 어릴 때부터 운동으로 배구만 했다고 했다.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걸 일찍 찾아 십 년 넘게 갈고닦은 실력에 적수가 없었다. 그 열정이 존경스러웠다. 이때 이런 생각을 했다. "혹시 나도 이런 나만의 것이 있었지만, 무언가와 타협하느라고 포기하거나 놓쳐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때부터 나의 장점을 찾아 키우기 시작했다. 대체불가한 존재가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