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락 May 10. 2017

사소함이 소중한 함지민의 Names of Beauty


지민 씨, 아름다움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움과 예쁨은 다르다고 생각하잖아요. 예쁨은 좀 더 외적인 것에 한정되어 있고 아름다움은 내면적이고 깊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아름다움이 예쁨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정신적인 것이나 추상적인 것에도 예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일단은 평소에 제가 언제 예쁘다는 말을 사용하는지 생각해봤어요.


제게 예쁨, 즉 아름다움은 기억하고 싶은 것이에요. 그것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말言일 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의 신념이나 가치일 수도 있죠. 일단 여기까지 생각을 해두고 그렇다면 제가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를 더 궁리해봤어요. 왜 이런 것들을 기억하고 싶을까 자문해 본거죠. 그러고 보니 제가 아름답다고 느끼고,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들은 모두 제게 의미 있게 다가온 것들이더라고요.


최근에도 그랬던 순간이 있었는데요. 가까운 동생과 서로 바빠서 보자고 하고 한동안 못 만나고 있었어요. 그러다 그 친구가 중국에 가게 됐는데, 가기 전에 어떻게 지내냐는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 카카오톡을 보고는 정말 사소하지만 그 마음이 너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국 전에 바쁘기도 할 텐데, 저를 생각해주고 연락해준 그 마음이요.


시간이 맞아 다행히 출국 전에 그 친구를 볼 수 있었어요. 좋은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려는데 동생이 몇 가지 선물을 꺼내더라고요. 그중에서 ‘나쁜 기억 지우개’라는 글귀가 적힌 지우개를 주면서 “언니, 앞으로 취업 준비하는 과정에서 힘든 일도 있고 안 좋은 순간이 생길 수도 있는데 이걸로 나쁜 기억들 다 지웠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너무 찡해져서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어요. 그 말 자체도 참 예뻤고, 그 말을 할 수 있는 친구가 너무 예뻤거든요. 그 순간, 그 친구의 그 말을 평생 기억하고 싶어서 따로 적어놨어요. 저에게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거예요. 기억하고 싶고, 의미 있게 다가온 것들.


아름다움과 예쁨을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하셔서 그런지 사소한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고 잘해줘야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지 자문해봤어요. 또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최근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면, 과 특성상 제 주변에는 영화나 영상에 애정이 깊은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 말씀드릴 친구도 영화 쪽에 꿈이 있는데, 몇 달 전에 편집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어요.


친구는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자기가 어떤 영감을 받았고 어떻게 시나리오를 구상 중인지, 제목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진지하게 말해주더라고요. 그런데 있잖아요. 전 그 순간이 잊히지 않았어요. 친구의 눈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 진지함과 고민을 발견했는데 그게 너무 아름다웠어요. 


진심이 묻어나는 그 친구의 말과 열정이 너무 예뻤고요. 그렇지만 그게 저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해 한 말은 아니잖아요. 이렇게 사소한 일상 속에서 제게 의미를 남기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럼 그런 순간들에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도 있을까요?


말하자면 관계와 진실함 같아요. 아름다움은 혼자서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더 잘 느껴지더라고요. 상대방의 진심에 감동받고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거죠. 영화를 준비하는 친구를 대할 땐 꿈에 대한 진지함이 느껴져서 아름다웠고 지우개로 나쁜 기억을 지우라는 친구와는 그 진심 속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어요.


무엇이 의미 있고 아름답기 위해서 꼭 거창하거나 특별할 필요는 없어요. 진실된 관계 속에서는 사소한 대화에서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승무원인 오랜 친구가 언젠가 제게 “밤 비행기를 타게 된다면 꼭 창문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봐봐, 별이 가까이서 엄청 많이 보이는데 너무너무 예뻐. 어제 야간비행하는데 너무 예뻐서 너한테 보여주고 싶었어.”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사실 별 거 아닌 대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마음속에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어요.


관계가 의미 있는 건 서로 느끼는 진실된 감정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관계라는 게 누가 누구를 꼭 설득하려는 게 아니잖아요. 관계 속에서 서로의 진심을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다르면 다른 대로 새로운 생각과 가치를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의미는 충분하다고 믿어요.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한 마디를 부탁드려보려고 해요. 이렇게 기록하는 대화는 휘발되지 않고 오래 남는 법이잖아요. 삶의 마지막 순간임을 가정하고 뭔가 남긴다는 생각으로 한 마디를 해주신다면.


좋아하는 배우 김태리 씨의 수상소감에서 굉장히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사람에게 죽는다는 사실 외에 필연이라는 건 없고, 매 순간이 다 우연이라고 생각한다고, 그 우연 속에서 만난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이었어요. 제가 죽음이라는 필연을 지금 바로 맞이하게 된다면, 저 또한 여태까지 우연과 운 속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어요.


저한테 따뜻함을 전해주고, 관계들 속에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해줘서 덕분에 참 많이 행복했고 즐거웠다고요. 또 우리는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 뒤에 다시 한번 우리에게 우연이 주어진다면,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지 또 만나게 된다면 그때 내가 더 좋은 사람이고 싶다고, 오늘까지 정말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어요.


본 매거진에 실린 모든 인터뷰는 namesofbeauty.com 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콘텐츠 기획자 조동환의 Names of Beaut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