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마음에 담고 사랑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소유하거나 통제하고 싶어지곤 한다. 혹은 내가 그 대상이 되거나. 때로는 그런 인간적인 욕망이 정작 사랑의 본질을 망쳐버릴 때가 있다. 힘을 빼고 상대를 하나의 풍경으로 대하면서 나 역시 그의 풍경이 되어주는 것. 서로 관조하고 병렬하며 존재하는 것이, 사랑의 가장 이상적이고 숭고한 형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사랑법)
왜 매일 아빠가 술을 마셨는지 알게 됐다. 나약하고 한심한 스스로가 미우면서도, 어깨 가득한 현실의 무게를 그 순간이라도 마비시키고 싶은 거였다. 아빠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겉으로 그럭저럭 멀쩡히 기능해 보인다는 거다. 번듯한 직장에 아무렇지 않게 출근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동물을 돌보고, 식물을 키우고, 발레를 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젊은 알코홀릭(alcoholic)의 슬픔)
이 불공평하고 모순이 가득한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죽음의 순간에서야 비로소 비참한 평등을 맞이한다고 봐야 하는 걸까. 행복과 불행의 총량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이 고통을 견디고 난 이후에는 꼭 그만큼의 좋은 일이 반드시 올 거라고 믿던 시절도 있었다. 그게 맞는지 어떤지는 죽음의 순간 각각의 무게를 재어봐야 알 일이다.(변사 사건 발생 보고)
음악에 맞춰 사뿐사뿐 춤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발레의 매 순간은 고통을 견뎌내는 과정이고, 발레의 아름다움은 그로부터 비롯된다. 고통에서 만들어지는 특유의 찬란함이 있다. 조금만 더 유연했더라면 망치지 않았을 관계와 상황이 아쉬워진다. 잘못된 습관으로 굳어진 근육처럼, 사고도 아집이나 고집으로 경직되어 있던 게 아닐까. 그 곳에도 숨을 불어넣고 스트레칭을 시켜줄 필요가 있겠다.(취미 발레 이야기)
사람들은 내가 자기애가 강하다고, 이기적이라고, 나르시시즘이라고, 소시오패스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차라리 그렇게 보이는 것에 안도할 때가 있다. 불안을 들키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구걸하거나 확인받아서 약해 보이는 모습보다는 세 보이거나 아무렇지 않아 보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어리고 예쁜 건 권력이지만 그게 찰나이고 결코 주체적일 수 없었다는 것을.(예쁜 여자의 삶)
아무 웃긴 일이 없어도 그냥 한번 웃어보면 갑자기 밝아지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걸으면 왠지 내가 꽤나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씩씩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등과 어깨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시선을 떨구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의식적으로라도 가슴을 펴고 힘차게 걸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발레학원에서 배운 삶의 자세)
미안해, 고마워, 좋아해, 걱정하고 있어, 부끄러워, 나는 네 편이야. 이런 류의 표현은 굳이 언어로써 표현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하고 전달받을 수 있다. 물론 그 관계에 공고한 신뢰가 확보되어 있고, 그런 비언어적 소통을 감지할 만큼 예민한 촉수가 발달된 사람들 사이에서만 이런 방식의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비언어적 소통법)
하지만 이런 혼란은 인간이기에 느끼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고통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관계가 명료하고 심플할 수 있다면 참 편하겠다. 다만 보통의 사람들과 맺는 관계의 모습은 대체로 그렇지 않으니까, 이 양가성에 익숙해지며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모순을 해석하고 정리하는 방법을 익혀내야 한다.(양가감정(ambivalence)
2025. 11. 26.
문장 출처 - Ubermensch의 브런치스토리 괄호 안은 글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