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지도 모르고 살아왔던 내가 보통의 사람들처럼 편안해지기를 원하는지, 그게 가능한 일인지. 그건 앞으로 생각을 조금 더 해 볼 주제로 두려고 한다. 이 불안과 과각성이 어떤 불편한 축복같달까. 그렇게 나는 여전히 과도하게 생각하고, 존재하고.(HSP적 사고와 불안)
타고난 기질이 예민하고, 세로토닌 조절 능력에 문제가 있고, 여러 상황과 사람에 불편함을 잘 느끼고, 살아온 환경이 방어성을 키워서 지금 이 모습이 되었다. 아무리 애써도 기질이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그 이상적인 평범의 틀에 맞추고자 하는 꿈을 어느 정도 포기했다. 그래서 조금은 쓸쓸한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결국 규격화되지 못한 존재만의 가치도 분명 있지 않을까.(평범에의 강요)
그래서 나는 텍스트 방식의 대화를 선호한다. 상대방의 말의 의도를 분석하고,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답을 생각할 시간을 벌 수 있으며, 널뛰는 사고를 정돈해서 일반화시키고 정제된 답변을 만들어 낼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활자로 남긴다. 침묵과 시선으로 넘기며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말들과, 용기를 내지 못했던 마음과, 외면했던 감정과, 너무 많아 감당하지 못했던 생각들에 대해서.(불편한 대화에 관한 고찰)
너는 어쩜 그렇게 꽃밭에 사니, 사회에 그렇게 치이고도 해맑은 게 신기하다. 하는 타박 섞인 이야기를 들었던 때도 있었다. 그땐 과자 껍데기만 바람에 날아가도 웃음이 꺄르르 났다. 그때와 지금은 뭐가 다를까. 뭘 더 해야 그때의 해맑음을 회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뭘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천천히 생각해 볼 문제다.(무쾌감증(anhedonia)
과다한 정보의 유입은 피로감만 유발할 뿐이다. 적당히 흘려보내고 무디게 사는 게 오히려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본인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너무 많이 감각해버려서 고통받는 초민감자들이 분명 여럿 존재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차단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많은 자극이 버거워서. 나도 그런 편이다.(식스센스(The sixth sense)
사실 본인의 고통은 타인에게서 해결할 수 없다. 스스로가 책임지고 감당할 몫이다. 누군가 잠시 나와 함께 걸어주고, 짐을 나눠 들어주고, 눈을 맞춰주며 너의 마음을 안다, 정도 전해주면 충분하다. 누구나 자기만의 고통이 있고 그게 각자 삶 고유의 무게이며, 그걸 스스로 견뎌내는 과정을 겪어야 비로소 더 단단하고 멋져지는 것이니까.(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법)
그렇지만 어른이므로, 이제 또 몇 년 후면 세상의 혼란이나 유혹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불혹(不惑)의 나이를 맞이해야 하므로. 나는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마음속 아이의 투정에 굴복하지 않을 거다. 그래도 내 일부이니까, 손을 꼭 잡고 함께 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어른이 된다는 것)
"살면서 누가 나를 알아봐 준다는 게 얼마나 큰 일인지 알아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이 한 말이다. 지안과 동훈은 서로의 존재를 알아봐 주었다. 단순히 너 불쌍하다, 안됐다, 하는 식의 값싼 동정이 아니다. 인간적이고 본질적인 방식이다. 뻔한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팍팍한 삶을 견뎌온 사람과 사람 간의 유대가, '알아봐 준다'는 말속에 묵직하게 녹아 있다.(나의 아저씨들)
2025. 11. 25.
문장 출처 - Ubermensch의 브런치스토리 괄호 안은 글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