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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May 16. 2024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생각해 보면 힘들었던 지난 세월

앞만을 보며 숨차게 달려 여기에 왔지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이제 여기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네     


어린 시절에 뛰놀던 정든 냇물은

회색 거품을 가득 싣고서 흘러가고     


공장 굴뚝의 자욱한 연기 속에서

내일의 꿈이 흐린 하늘로 흩어지네     


하늘 끝까지 뻗은 회색 빌딩 숲

이것이 우리가 원한 전부인가     


그 누구가 미래를 약속하는가

이젠 느껴야 하네     


더 늦기 전에     


그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서

밤하늘을 바라 볼 때에

하늘 가득 반짝이는 별들을

두 눈 속에 담게 해주오     


저 하늘 촘촘히 박혀있던 우리의 별들을

하나둘 헤아려 본지가 얼마나 되었는가

그 별들이 하나둘 떠나고 힘 없이 펼쳐지는 작은 별 하나

자 이제 우리가 할 일이 무어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저 별마저 외면해 버리고 떠나 보내야만 하는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더 늦기 전에’     


오래전 당시 인기 있던 가수들이 모여 함께 부르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나는 노래다.

집에 와서 찾아본다.


“1992년 환경 보존 캠페인으로 기획된 내일은 늦으리 콘서트에서 발표되어 같은 해에 발매된 곡이다. 당시 큰 인기를 끌던 가수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곡 발표 당시 아직 신인이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레이션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 모두 신해철이 맡았다.”(나무위키)      


노래를 찾아 들으며 당시 인기 있던 가수들을 만나니 반갑다.

N.EX.T, 봄여름가을겨울, 윤상, 유영석, 신성우, 015B, 김종서, 이승환, 신승훈, 이덕진, 서태지와 아이들     


다른 무엇보다, 30년 전 환경 보호를 위해 지은 가사를 음미하고 있으니, 오늘의 환경을 생각하고 있으니, ‘더 늦기 전에’라는 말이 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새삼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힘들었던 지난 세월 앞만을 보며 숨차게 달려 여기에 왔지”     


자본주의의 붕괴 위기가 떠오르는 가사다. 앞으로 점점 더 자동화하여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게 되고, 자본이 노동자 착취로부터 이윤을 뽑아내지 못하게 되면 이윤율이 저하될 텐데, 자본은 어디서 이윤을 뽑아낼 것인가. 이윤을 뽑아낼 곳이 없으면 자본은 어떻게 존속할 것인가.      


이윤만을 추구하며 달려가는 자본에게 지구의 미래를 맡겨둬서 해결책이 있는가. 지난 세월 힘들었던 노동자들에게 미래는 있는가. 자본만 살아남고 노동자들은 더 힘든 세월을 견디다 사라져갈 것인가.      


성장 지상주의에서 탈피해 성장의 속도를 늦추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면서 인간과 자연을 돌보며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핀란드와 같은 복지 국가들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자본주의 붕괴와 환경 재앙이 오기 전에 전쟁으로 인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핵’을 없애는 것이 우선할 일인가.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이제 여기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네”     


그때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경제도 환경도 핵전쟁도 위기가 더해져만 가지만, 극에 달한 위기가 기회가 되도록 ‘더 늦기 전에’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자본의 붕괴가 인류의 붕괴로 이어져서는 안 될 테니까.      

“공장 굴뚝의 자욱한 연기 속에서 내일의 꿈이 흐린 하늘로 흩어지네”

“하늘 끝까지 뻗은 회색 빌딩 숲 이것이 우리가 원한 전부인가”     


자본의 성장 지상주의, 개발독재, 무분별한 생산과 발전이 가져온 결과는 우리 삶의 터전인 ‘공기, 물, 흙’을 오염시키며 빼앗아 갔다. 온난화와 농촌 소멸로 우리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원한 것은 아닐 테다. 자본의 이윤 중심주의가 원한 것일 뿐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다 준 풍요는 우리의 생명을 부정한 결과이며 그들만의 풍요일 뿐이다. 그들 소수의 풍요는 다수의 빈곤을 가져다 주고 있을 뿐이다. 이제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요구하고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길일 테니까.          




“그 누구가 미래를 약속하는가 이젠 느껴야 하네”     


자본가나 자본주의 국가권력이 우리의 미래를 약속해 줄것 같지는 않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고집하는 한 그들이 만들 우리의 미래는 없어 보인다. 이윤을 위한 성장이 아닌 모두의 풍요를 위한 분별 있는 성장으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렇게 느낀다. 그렇게 느끼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일 테다. 우리의 생명을 위해서 말이다.


“그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서 밤하늘을 바라 볼 때에 하늘 가득 반짝이는 별들을 두 눈 속에 담게 해주오”     


그 언젠가 더 이상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경제, 환경, 전쟁의 위기 속에서라면 아이들을 출산하는 것이 더 이상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과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눈에 담는 시간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아이들의 눈이 별을 기억할 테니까, 그렇게 별과 하나 되어 별을 지켜갈 수 있을 테니까.      




“자 이제 우리가 할 일이 무어라고 생각하나”      


30년 전 그들의 물음에 이제 우리가 답해야 할 것만 같다.     


더 늦기 전에.          



2024. 5. 16.    



'92 내일은 늦으리 - 더 늦기전에 (Theme Song)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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