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부단히 민주화해 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나의 입장이기도 하다. ‘완전하거나 완벽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지금보다 더 나은 민주주의로 부단히 민주화해 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모든 민民이 주인主이 될 때까지 反인권, 차별, 불평등을 줄이고 해소해 나가는 것이 민주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인류는 더 나은 정책을 모색하고 법과 제도로 보완해 나가고 있을 것이다.
인류의 국가들에서 민주화는 ‘입법-사법-행정’이라는 과정을 수행하는 위정자와 관료에 의해 이루어진다. 민주주의를 민주화하기 위해선 국민들이 민주화의 의지가 있는 위정자를 선출하는 것은 중요할 것이다.
국민들이 판단해 선출한 위정자들이 민주화를 충분히 실현하지 못할 경우 책임을 묻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소환을 하는 제도도 있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제도가 제대로 시행된 경우는 많지 않다고 알고 있다.
소환의 근거가 모호하다는 것이 그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법과 제도는 위정자와 관료들에 의해 법제화되어 형식을 갖추는 것인데 위정자들이 자신들에게 책임을 묻는 제도를 만드는 데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한 사실이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데 큰 어려움이자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정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 이전의 ‘원시공동체’로 돌아가지 않는 한 모든 ‘民’이 ‘직접’ 정치를 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국가나 공동체, 법과 제도가 인간들의 세상에서 불가피하다고 한다면, 그리하여 민주화를 위한 ‘정치’가 중요하다면, 그 정치의 형태가 ‘간접이냐 직접이냐’라는 구분보다 간접이든 직접이든 민주화를 위한 의지와 정책이나 법과 제도를 얼마나 현실화할 수 있는가라는 ‘民’의 역량이 중요할 것이다.
反인권, 차별, 불평등에 대한 입장 차이에 따라 각자의 권리를 위한 정치가 권력을 위한 전쟁이 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민주화를 우선할 수 있는 것도 간접이든 직접이든 모든 ‘民’이 ‘主’가 되어가는 민주의 민주화 정도에 달려 있을 것이다.
2024.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