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기간 유세 무대에 미국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등장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다른 무엇보다 그가 입은 티셔츠에 ‘화성 점령(Occupy Mars)’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눈에 들어 온 건 ‘점령’이라는 단어였다. 그 단어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쳤다. 지구의 역사, 아니 인간들의 역사를 한 마디로 말 해야 한다면 ‘점령’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이다. 누가 누가 더 많이 영토(자원)를 ‘점령’하느냐의 역사 아니었나.
미제국의 수장이 누가 되든 ‘점령 이야기’가 새롭게 쓰일 일은 없을 것이다. 멈출 수 없는 관성의 법칙에 따라 제국들의 ‘점령’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이다. 기어이 끝을 봐야 끝나는 것일 게다.
재미도 감동도 없는 '점령 이야기'에 그래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또 다시 한반도가 제국주의자들의 대리 전쟁터가 된다면 참 슬플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점령자들의 전쟁의 도구가, 학살의 무대가 되어야 한다면 슬프다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쓸데없는 관심으로 나의 아름다운 지구 생활에 방해를 받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한다. ‘점령의 역사’를 살아가는 길은 그럼에도 점령당하지 않을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화성 점령을 시작으로 우주 제국을 건설할 제국주의자들 덕분에 어릴 적 품었던 우주에 대힌 호기심들이 해소될 것이니, 우주선이 상용화되면 그곳에서 살거나 여행할 수도 있을 것이니, 드디어 영화 속 외계인들과 조우할 것이니, 기뻐해야 할까. '스타워즈'의 서막일 뿐일까.
그런 저런 생각들이 새벽 별처럼 스쳐가지만 이내 해가 뜨면 또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제국의 점령자들이 만든 세상에서 그들과 함께 그들과 다른 하루를 열어 간다. 차가워진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가만히 걸어간다.
2024. 11. 19.
대문사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