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입장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본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그렇다는 것이다.
임금을 적게 주고 일은 더 시켜야, 중단없이 대량 생산을 할 수 있어야, 신상품을 생산해내야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시스템 말이다. 금융 신상품, 주택 신상품, 보험 신상품, 인간 신상품을 생산해내야 유지되는 그런 시스템 말이다.
그러니까, 착한 사장님, 착한 기업인, 착한 자본가는 존재할 수 있지만, 그들의 인성이 착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환경이라는 문제에서도 착한 경우는 대단히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도 살아 남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임금과 노동환경을 착하게 하여 착하게 살기 위해서 자본가들의 입장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자본가와 노동자, 그들은 입장 바꿔 생각하기가 대단히 곤란한 관계인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그렇더라도 그 시스템도 운동을 거듭하다 언젠가 변해야 할 때가 오겠지만 당장에 살아야 하겠기에 상생, 공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럴 경우, 자본가와 노동자만 아니라 ‘정치인, 정부 관료, 법조인, 지식인, 언론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필요한 것은 착한 인성이 아니라 과학일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하여 자본가와 노동자가 ‘상생’할 수 있는 다른 시스템을 모색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도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살기 위한 의무인 것이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입장이, 노동자는 자본가의 입장이 될 수 없지만, ‘정치인, 정부 관료, 법조인, 지식인, 언론인’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자본가와 노동자, 그들 모두가 ‘상생’을 넘어 ‘공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취해야 할 입장은 자본가나 노동자 어느 쪽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을 상생의, 공생의 시스템으로 만들어 가는 입장이어야 할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는 착한 입장은 그런 입장일 것이다.
지금껏 늘 하던대로, 노동자 혹은, 민중, 시민, 국민의 고통을 통해서 자본가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그 권력 아래 정치인, 정부 관료, 법조인, 지식인, 언론인이 공조하여 기득권 유지와 각자도생이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 되는 한 상생은커녕 모두의 공멸이 있을 뿐이겠다.
나 역시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내 것 챙기기 바쁜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다만,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아보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문을 품는 것, 그것으로도 한 인간으로서 충분한 삶이 아닌가 싶다.
2024.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