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꼰대라는 단어가 자주 회자되는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한창인 요즘 사회의 세대교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가 싶다.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처럼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어른을 공경하고 경험을 존중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오랜 사회문화가 최근 들어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꼰대라는 낙인을 피해야 하는 또 다른 숙제가 생겼다. 은근히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희화화되는 꼰대, 꼰대가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노자의 도덕경 제76장에는 '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 (인지생야유약, 기사야견강), 萬物草木之生也柔脆, 其死也枯槁 (만물초목지생야유취, 기사야고고), 故堅强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고견강자사지도, 유약자생지도) (이하 생략)'이란 글귀가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은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죽은 사람의 몸은 굳고 단단하다. 살아 있는 만물과 초목은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죽은 모든 것은 말라 딱딱하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은 것이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산 것이다는 뜻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이 굳어지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연스러운 준비과정이다. 이렇게 몸이 굳어가면서 모두 꼰대가 되는 것일까? 아니다. 몸이 굳어간다고 해서 꼰대라 불리지는 않는다. 마음이 굳어가는 사람이 바로 꼰대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우리는 건강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다. 몸이 굳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하는 노력이다. 그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 그렇지만 대부분 육체 운동이 전부이다. 꼰대를 두려워하면서도 말이다.
벌써 마음이 굳어서일까? 몸이 굳는 것은 알아도 마음이 굳는 것은 모른다. 마음이 굳으니 다른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곤 한다. 들으려 하지 않고 말하려만 든다. 과거에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모든 변화를 변절이라 치부하고 비난한다. 경험만을 내세우고 새로운 지식은 외면한다. 그러면서 마음은 또 굳어져 간다.
마음이 굳어가는 것을 늦추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매일 새로운 음식을 먹듯 마음과 정신에 새로움을 공급하면 된다.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듣고, 새로운 책들을 읽고,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새로운 곳에 가보고, 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배워보자. 여기에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새로운 것이란 꼭 최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이 새로운 것이다.
육체 운동보다 마음의 운동이 더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새롭게 얻은 지식은 굳어져 버린 우리의 경험을 부드럽게 녹여줄 것이다. 과거에 켜켜이 쌓인 경험들이 세상에 맞게 새로운 지혜들로 다시 탄생할 것이다. 사진 속의 현자들처럼 우리 얼굴에 패인 어두운 주름살에도 비로소 현명함이 빛으로 드리워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버럭 화내는 꼰대의 얼굴에도 부드러운 미소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