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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Aug 09. 2024

투신, 그 역설적 상황



2024.08.10

입지전적 인물의 전기를 읽어보면 유독 사업에 투신했느니, 정계에 투신했느니 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접한다. 글자 그대로 몸을 던진다는 투신의 의미가 무엇인지 진짜로 투신을 하였는지도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매스미디어에서 접하는 유명인, 특히 정치인들의 내로남불성 언사에 비추어 보면  자기 몸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던지는 사람은 눈을 닦고 다시 봐도 보이지 않고 죄다 양손에 떡을  들고도 모자라 입안 가득 떡 한 모금  더 베어 물어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자세다.

내려놓음은  어쩌면 인간 본성에 역행한다. 돌잡이라는 돌잔치 행사의 하이라이트도   걸음마를 이제 막 시작하는 말도 못 하는 애기들이 무엇을 움켜쥐는 가로  장래를 가늠하는 예측의 잣대로까지 생각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움켜쥠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며 움켜쥔 것을 내려놓는 것은 본능을 거스르는 대단한 결단이 아닐 수 없다.

손에 쥔 것 하나 내려놓지 못하는 인간이  타인을 위해 온몸을 던져 투신한다는 것은  대다수가 위선이다. 특히 양지바른 곳, 달콤한 꿀물이 흐르는 각종 이권이 도사리고 있는 정치권에서 정말 자기 몸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내 던지는 사람은 대단하다.

 

찌 정치권뿐이랴 , 제도권의 비호를 받는 종교, 의료 쪽은 그들이 내거는 고상한 이상만큼이나 실상을 파혜쳐 보면 구린내가 진동하기가 십상이다. 이 역시 선의로 시작한 모든 일들이 해를 거듭하면서 헷갈리기 시작해서  선의를  악의 뒤 고 조직의 검은 욕망이 똬리를 면서 존재목적을 천천히 잠식하면서 변질된 허상이 뿌리를 내리고 공동체의 필요악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국가가 발전하고 성숙되는 과정에서 본능을 거스러고 자기 몸을 국가를 위해 투신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웅들이 있었다. 그 영웅들이 음지에서 보여준 헌신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영웅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인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자기 손하나 내어줄 수 있는 아량을 가진 장삼이사의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 바로 우리가 대단하다고 여기는 히든 히어로이지 않을까?


더 나아가 숨겨진 우리 안의 영웅들이 우리 공동체 속에서 힘을 받고  살 수 있도록 위선자와 의인만이라도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 만이라도  우리 모두가 가지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과 조직이 썩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침묵하는 다수의 선택이 지속가능한 삶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지속가능하지 않는 삶으로 가면서 온갖 협잡과 위선을 도모하는모리배들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함에도 팬덤과 같은 세력을  등에 업고 득세하는 세상을 만나면 질서는 무너지고 모두가 참지 않는 최대이익 추구자가 되어 조직과 사회 나아가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신상필벌이라는 공동체의 기강이 흔들리기 시작되면 공동체는 그 길로 내리막길로 내려갈 수 밖에 없다.

내리막길이라는 의미는 더 이상 그 공동체는 아량이라는 룸이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모두가 참지 않고 최대 이익 추구자로 나서면 그 사회는 정글로 변하면서  약육강식의 자연의 섭리가 세상의 원리로 자리잡게 되며 그 최대 피해자는 두말할 것 없이 공동체의 최약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약자를 보호하겠다고 외치고 다니는 선의를 가장하는 선동꾼을 우리가 경계해야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선의로 포장된 선동의 끝은 대개 파국으로 끝나기 마련인 것이 역사적 교훈인 것이다.


선의를 그대로 맹신하는 순진한 대중이 마주하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 정글 속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비참하고 비루한 삶이다.   그러한 정글에서 빠져나온 문명의 파국이 도로 정글인 것이다.


수많은 히든히어로가 제 한몸 투신하여 문명을 이루고 세상 속의 인간의 복리증진을 했지만 한 줌도 되지 않고 몸은 커녕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 입만 살아 번지러한 말로써 혹세무민 하면서 선동을 일삼는 소수의 모리배를 솎아내지 못하면 우리는 빈곤에서 빠져나와 풍요속에 빠져 죽는 풍요의 역설 속에 갇히는 내리막길로 올라 탈 수밖에 없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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