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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Aug 14. 2024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餘有慶)



2024.08.15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餘有慶), 결혼 전에  처갓집에 처음 인사차  방문한 날 장인어른께서 직접  붓글씨로 써서 표구한  액자가 떡하니 거실 상단 벽에 걸려 있었다.


착함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경사가 흘러넘친다 라는 글자 그대로 의미 외에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세대를 지나오는 동안 수많은 사건과 갈등과 위기에 직면해서 시험에 든 순간 자기주장을 내세우기도 하고 가끔씩 언쟁도 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도 하는 와중에 그래도 부여잡고 싶었던 것이 착함이었다. 감정이 올라와 모진 마음이 들다가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같이 사는 세상의 가장 큰 가치는 착한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마음을 다시 다잡곤 했다. 그 마음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파국은 막지 않았는가 짐작해 본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헷갈리는  말 중에 하나가  착함이라는 말다. 무엇이 착하다는 말인가. 정말 착하기만 하면  경사로운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어쩌면 인생을 살면서 모든 인간들이 알고 싶은 화두가 착함을 둘러싸고 일어난다.


생존경쟁의 장이라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착한 것인지 척하는 것인지를 가려내는 필살기를 갈고닦아 착함과 척함을 구별하는 재주만큼은 지구상의 그 어떤 종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니 척 보면 착하고 아는 선천적 필살기를 가지고 사는 우리 인류가 만든 세상은 실재하는 착함인지 위장하는 척함인가를 가리는 지난한 테스트가 일 분 일 초도 쉬지 않고 일어나는 시험의 장소이기도 한 것이며 그것을 구분하기 위해 우리는 언어를 발명했고 이렇게  발명된 언어로 문명이라는 세상을 만든 것이다.

수십억 년의 생명줄에서 우리 호모사피엔스가 결국 살아남아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 원인을 분절화된 언어의 발명 때문이라고 한다. 가장 최근에 멸종되어 우리에게 편입된 네안데르탈인이 호모사피엔스 보다 큰 두개골 용량과 우월한 신체를 가지고서도 생존하지 못한 원인을 'Hum'이라는 음악과 언어가 혼재된 분절되지 못한 소통수단 때문에  동시대를 살아간 호모사피엔스와의 생존경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 호모사피엔스는 집단을 이루고 점차 집단구성원이 증가함에 따라 소통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그 소통의 방법으로 분절화된 언어를 개발했고 동시에 감정을 처리하는 또 다른 언어인 음악을 함께 발명했다. 이 두 가지를 분리한 덕분에 우리는 사회적 언어를 더욱더 갈고닦아 문명을 이루는 주춧돌을 쌓았던 것이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지만 여전히 우리는 감정과 이성이 혼재된 이데아의 틀 안에 사로잡혀 있다. 즉 음악과 언어가 서로 충돌하는 전쟁의 한가운데 우리는 놓여 있는 것이다. 본심은 한없이 음악적 감성을 호소하지만 언어는 늘 차갑고 사무적이어서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 십상이다. 즉 의도는 했으나 결말은 비참하게 끝나는  파국으로 달리는 대화의 속성과도 같다.

그 어딘가의 지점에 착함이 존재하는 것 같다. 우리는 착함에 반응하고 느낄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의 여생도 이 착함의 지점을 재빨리 포착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인 것 같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종의 생존경쟁에서 승리한 경험이 우리 게놈에 내재되어 있고 이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그것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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