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해 Aug 11. 2024

무화과 그늘에 숨어 앉아


2024.08.12


무화과 그늘에 숨어 앉아 지난날을 생각하며 이야기하고 싶다던 몰래 사랑했던 남녀는 다 어디 가고  무화과 속의 암술과 수술 그리고 암수 무화과 벌이 무화과 열매 속에서 진짜 사랑을 나누다 사랑이 끝나면 날개가 없는 수컷 무화과벌이 암컷 무화과벌을 탈출시키기 위해 무화과 꽁무니에 있는 작은 구멍(ostiole) 통해 시코니움(syconium)에 터널을 파고 날개가 있는 암컷 무화과 벌을 무화과 열매로부터 탈출시키고 자신은 무화과 열매 속에서 죽어가는 장엄한 러브스토리는 영화 타이타닉에서  차디찬 대서양 바다에 떨어진 후 여주인공 로즈 (케이트 윈슬렛)를 나무 널판지에 태우고 끝까지 그녀를 보호하다가 대서양 심해로 사라져간 도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대로 옮겨놓는 듯 하다.


이처럼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생식과 번식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컷이라는 껍데기가  다음 세대를 품을 수 있는 암컷이라는 알맹이에게 자기의 유전자를 전달한 다음 암컷을 사지로부터 탈출시키기 위해 기꺼이 죽어가는 수컷 무화과벌(Blastophaga psenes)의  러브스토리로 가득 차 있다.


 무화과나무 그늘에 숨어서 몰래한 사랑처럼  일단 남녀의 사랑이 시작되면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처럼 부끄러움을 느끼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들을 가리고 숨을 곳을 찾아다니는 은근하고 달빛 같은 사랑이 월광소나타처럼 남녀를 울린다.


남녀의 울림이 지나가고 나면 아기의 힘찬 울음이 시작되고 생존을 위한 육아와 노동이라는 대하드라마가 시작되고 남자는 여자와 아기를 키우고 보호하기 위한 지난한 노동 속으로 내몰리고 그 노동의 대가로 얻어지는 유산 만을 남긴 체 사라져 가는 것이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의 운명인 것이다.


 무화과 암술과 수술 그리고 열매와 뒤섞여 형체도 알 수없이 새빨갛게 산화한 수컷 무화과벌로 구성된 무화과 열매를 두고 채식주의자 비건들은 육식과 채식의 경계를 헷갈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무화과 열매를 먹으면서 기억해야 될 소중한 사실은 유전자 전달과 보전을 위해 몸부림치며 죽어간 수컷 무화과벌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영화 타이타닉의 사랑이나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의 사랑 못지않다는 한 가지 사실이 아닐까?


무화과 그늘에서 숨어 앉아 이야기로 시작된 남녀가 몰래 사랑을 하고 헤어진 후 추억을 잊지 못해 그때 한 사랑을 회상하며 지금은 누구와 사랑을 하고 있을까 하며 불러보는 노랫말처럼 그 사랑이 무화과 열매 안 무화과벌이 노래하는 자연계의 사랑이던 세상 속 남녀가 노래하는 인생계의 사랑이던 놀랍도록 닮아 있는 것은 사랑에 관한 한 자연과 세상의 경계가 없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누구인가, 그 철학적 사유의 출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