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해 록] 궤도(詭道, 속이는 도)와 상생상극
위태로운 말言이 다니는 길이 궤도(詭道, 속이는 도)라 부를 만하고 손자병법의 일인자 리링이 6,600자의 자구 중에 단 두 자 ‘궤도’(詭道, 속이는 도)로 이 모든 것을 정리했다고 하니 말과 글로 문명을 이루고 사는 우리 인류에게 있어 말과 글의 힘이 대단함을 새삼 느낀다.
우리가 문명 세상을 살면서 악세惡世를 만나면 흔히 자주 하는 말이 언로言路가 막혔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말이 가는 길이 막혔다는 독재시절의 언론 통제를 경험한 우리가 언론 불통을 막고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사통팔달로 언로言路를 열어놓은 지도 한 세대를 넘어서고 있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듯이 독재시절의 언론통제가 풀린 후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각계각층의 발화된 언로는 빗장이 풀린 대문처럼 망국과 독재로 숨죽여 있던 우리 민족의 특성인 프로 민원러의 본성을 순식간에 일깨워 내어 혼돈과 카오스를 수시로 발동시키고 궤도詭道, 즉 속이는 도를 즉시로 시연하면서 사이비 언론과 기러기 언론 그리고 언론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한 서린 굿판으로 언로言路를 도배하고 있다.
그러면 언론통제의 빗장이 풀린 지 한 세대 만에 우리나라는 어떤 궤도軌道를 달려왔길래 궤도軌道가 궤도詭道, 즉 속이는 도로 변질 되었을까?
원래 붓을 들어 세상을 밝히고자 하는 길로 접어든 사람의 인생은 배고프고 고달프며 핍박과 야유 조소와 탄압이 함께 한다. 바른말한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종교의 보호막과 같은 크고 작은 조직의 비호 없이 맨 땅에 헤딩하는 황량한 벌판에 서서 진실을 말하는 철학자나 과학자 그리고 지식인의 말로는 대체로 가난하고 비참하며 신념을 지키려다 수시로 목숨까지도 내놓아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기 일쑤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연유로 대체로 진실을 위해 붓을 꺽지 않는 사람의 말로는 살아생전 고난의 연속이지만 시대를 앞서가고 제명에 못 산 대가는 청사靑史에 기록되어, 하지는 못하지만 하고는 싶은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된 코스프레를 거듭하는 것이 역사의 평행이론이다.
이처럼 범인凡人을 넘어서는 선각자들의 전유물이어야 할 언론의 영역이 언론통제의 빗장이 풀리면서 세상의 욕심으로 가득 찬 온갖 장삼이사의 놀이터가 된 지도 어언 한 세대가 지나가면서 장삼이사 같은 범인凡人 뿐만 아니라 욕망으로 가득 찬 광인狂人의 독무대에 환호하고 적국의 간첩과 스파이들이 암약하면서 반간계와 이간계가 춤을 추는 국익을 갉아먹고 이적세력의 운동장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아널드 토인비로 대표되는 서양의 역사가 도전과 응전의 기록이라면 사마천의 사기는 도전과 응전이라는 거시사 속에서 명멸하는 인간이라는 미시사를 열전에 담아 결국 인간이 만들어 나가는 세상의 미래는 인물에 의해 완성된다는 인물 중심의 역사관을 제시한 것이리라 짐작된다.
그런 인물들이 역사적 사건을 만났을 때 휘두르는 칼과 붓의 미시사가 거시사를 완성시키며 역사는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르며 천적과 동지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을 거듭하며 음양의 이치와 오행의 원리대로 상생상극相生相剋의 하모니를 이루며 역사의 한 바퀴는 돌아갈 것이다.
다만 악세라고 실망하지 말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동물의 왕, 사자의 호흡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이 모든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지나갈 것임을 굳게 믿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