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해 록] 시뮬레이션 계엄, 탄핵의 기술, VAR
말과 글로 달려온 문명버전 1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던 자연의 섭리가 차츰 퇴색해 가고, 인공지능을 앞세운 가상세계를 움직이는 ÀI 세상의 원리가 좀 더 정교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현실정치로 옮겨 가는 모습을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절대무기인 핵무기를 만들어 확보하고 있어도 핵무기를 목표물에 실어 나르기 위한 투발수단의 확보가 없다면 그 절대무기, 핵은 종이호랑이요 자폭무기에 다름 아니다.
마찬가지로 삼권 분립의 민주주의 나라에서 만일 세 권력 중 두 권력이 합세하여 국가의 정체성과 미래를 지속적으로 말아먹으려 할 때 도대체 나머지 한 권력은 어떻게 두 권력의 폭주와 태업을 막고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할 수 있을까?
그 와중에 한 권력이 자신에게 주어진 비상계엄이라고 하는 핵무기급 수단을 가지고 목표물에 도달할 수 있는 적절한 투발수단도 확보되지 않은 채 비상계엄이라는 핵무기를 발동한 12월 3일의 비상계엄은 이해의 폭을 넓히면 계엄 시뮬레이션이 되고 좁히면 그냥 자충수요 자살골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 본인의 말처럼 시뮬레이션 계엄이 아니라 진짜 계엄을 하려고 했다면 택일부터 진행까지가 마치 어설픈 허슬플레이(hustle play)를 보는 것 같지만 이 마저도 치밀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의도된 계획이었다면 계엄이라는 신속하고 경직된 군사작전의 틀에 소프트한 대민대처라는 예술까지 가미된 시뮬레이션 계엄이라고 하는 비상계엄의 신기원(?)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VAR(Video Assistant Referee)은 공정과 규칙을 앞세우는 현대 스포츠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첨단장치이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한 마라도나를 앞세운 아르헨티나는 최대 고비였던 8강전에서 잉글랜드를 만났다. 지금도 논란으로 회자되는 마라도나의 신의 손 한 골은 순식간에 전세를 되돌려 놓았으며 뒤 이어 터진 70미터 단독드리블 골로써 조국 아르헨티나에게 승리를 헌사하면서 월드컵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통해 손과 발을 합쳐 그 스스로 축구의 신으로 등극한 마라도나는 VAR이 없던 시대가 낳은 축구의 신이었다.
인간이 만든 세상은 가치중립적이며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섭리 보다도, 가치편향적이며 인위적인 세상의 원리가 지배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기도 하다.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세상 속 인간의 한계 때문에 우리는 종교를 만들었고 그렇게 만든 종교의 예속에서 풀려나기 위해 종교혁명을 하였지만 역시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은 종교의 혁명이 아니라 문예부흥이라는 르네상스를 불러와서 인본주의를 되찾았지만 그 역시 종교라는 껍데기만 제거했을 뿐 회복된 인본 안에 여전히 숨 쉬고 있는 가치편향적 사고마저 제거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절감하고 우리 인류는 가치중립적인 기계문명으로 나아가게 되었다고 인류 문명사를 바라본다면 지나친 비약이 되는 것일까
종교의 주인이 신이듯이 기계의 주인은 인간이어야 한다.
결국 신이 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기계를 만들었고 중세시대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심판했다면 이제 기계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심판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느새 와 있다.
신을 만든 인간의 욕망이 신에 투영되듯이 기계를 만든 인간의 욕망이 기계에 투영되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투표를 통해 권력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자유민주주의의 대의정치가 개표전산 조작이라고 하는 해서는 안될 부정 의혹으로 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한국형 개표기가 가는 곳마다 개표부정을 일으키고 급기야 키르기스스탄에서는 개표전산 부정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퇴임하고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는 정권교체가 일어나기도 했고 이번 계엄 직전에 윤 대통령이 만난 정상이 방한한 키르기스스탄의 대통령이라니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공교롭기까지 하다.
종교혁명을 통해 신과 인간 사이에 장애물을 치우듯이 AI혁명을 통해 인간과 기계 사이에 관계를 재정립해야만 하는 인공지능 시대로 우리는 달려가고 있지만 중세 암흑기 때 교황과 성직자들이 기를 쓰고 신의 대리인을 자처했듯이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기계와 인간 사이에서 가치중립적인 기계를 악용하여 AI, 또는 전산개표기, 출구여론조사라는 첨단기술의 이름을 내세우며 사전투표라는 시간을 빌어 국민의 대의를 왜곡할 수 있는 개연성은 여전히 상존한다.
우리가 사는 민주주의라는 운동장에 성역은 없어야 한다. 의문이 있으면 풀어야 하고 그 의문이 체제의 승부를 가르는 결승골이었다면 당연히 우리가 만든 VAR을 돌려 보아야 한다.
계엄에서 탄핵까지 결국 합심과 단결은 실종되고 배신과 불신에 더해 물 만난 제비처럼 나타난 수많은 군상들의 권력을 향한 욕망이 더해 엄동설한의 추위에 국민들을 거리로 내몰고 말았다.
뒤집어 씌우기나 악다구니 같은 악습이 이제 우리 공동체에게 전근대적 유산이 되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보여준다면 그나마 어제 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조금은 성숙된 사회로 우리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시대는 그렇게 한 뼘 한 뼘 고통과 눈물 속에 전진하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계엄의 예술과 함께 탄핵이라는 기술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판결까지 삼권분립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21세기 삼국지라는 치열한 각축장에서 승패를 가르는 신의 손, 아니 신의 한 수는 VAR(Video Assistant Referee)과 같은 가치중립적인 심판 Referee이 나와야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이미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를 살고 있다는 강력한 반증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