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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해 록] 백년전쟁 67, 글뤽 아우프 1967

by 윤해


막장礃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흔히들 막장礃인생이라고 나락으로 떨어져 갈 데까지 간 인생을 말하기도 하지만 원래 막장의 의미는 탄광으로 대표되는 광산 갱도의 막다른 곳을 의미한다.


6.25 전쟁으로 폐허라고 말하기도 사치스러운 잿더미와 같은 국토에서 다시 일어서는 기분은 광부가 수 백 미터 지하 탄광으로 내려가 막다른 갱도의 끝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공포감 속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 같은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너 자신을 알라는 테스형의 철학을 말하지 않더라도 나라는 자신과 나아가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실체를 똑바로 알기는 나 자신을 아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지난하다. 1967년의 우리의 모습과 처지가 이와 많이 다르지 않았다.

1967년은 1962년부터 1966년까지 1차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고 불철주야 동분서주하면서 우남이 세운 민주화의 토대 위에 산업화의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나가고 있었고 5천 년 가난의 패배감을 떨쳐버린다는 것은 그리 녹록지 않았으며 세계 패권질서는 우리를 그저 자유진영의 최전선을 지키는 변방의 후진국쯤으로 취급했고 실지로 우리의 처지는 식량자급화가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달성해야 할 당면 과제일 정도로 모든 산업이 열악했다. 자본주의 경제는 움직이면 돈이라는 말과 같이 국가적으로 무엇을 도모한다는 것은 기축통화 달러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식민지 청년 출신으로 죽음에서 살아 나온 40대의 젊은 지도자 박정희는 조국의 근대화를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의 번영을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을 기세의 박정희는 백 년의 적 일본과 손을 잡고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도, 세계패권질서의 패권국 미국의 손을 잡고 베트남에 파병을 하는 것도, 머리칼을 잘라 가발을 수출하는 것도, 쥐를 잡아 가죽을 벗겨 쥐모피를 수출하는 것도, 8.000명의 파독광부와 11.000명 파독간호사를 해외로 보내는 것도, 눈도 깜짝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그랬던 그가 미국에게도 막히고 일본에게도 거부당했던 대한민국 번영을 담보할 수 있다고 굳게 믿은 중화학 공업으로 나아갈 자금줄이 막히자 어쩔 수 없이 파독 광부 간호사의 임금을 담보로 차관을 얻고자 독일로 날아가 어느 이름 모를 탄광도시에서 번영된 대한민국 미래세대를 위해 희생하고 거름이 된 그들에게 진솔한 사과를 통해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어 버린 연설에서 60년이 지난 2025년 오늘의 우리가 왜 이렇게 여기에 서 있을 수 있는가를 일깨워주는 매뉴얼 같은 것은 아닐까?


"광원 여러분, 간호원 여러분. 난 지금 몹시 부끄럽고 가슴이 아픕니다. (중략)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중략)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60년 전인 1964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 뒤스부르크 함보른 탄광 주변의 한 강당에 모인 파독派獨 광부와 간호사를 격려하며 이같이 연설했다. 당시 그 자리에 모인 광부와 간호사들은 물론 박정희 대통령 옆에 있던 육영수 여사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 시절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3달러였다. 아시아 최빈국(最貧國)의 영부인, 육 여사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은 독일 신문에도 실렸다. 박정희대통령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임금을 담보로 1억 5900만 마르크(약 4000만 달러) 차관을 빌렸다. 그 돈으로 우리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된 경부고속도로와 포스코를 건설하는 귀중한 자금이 된 것이다.


산업화를 통해 수백 년 간 피를 흘려 이루어낸 서구의 민주화를 망국과 독립, 건국과 전쟁을 통해 불과 수십 년 만에 우남과 대한민국 국민이 이루어낸 민주화의 기적을 딛고 민주화의 토대 위에 산업화를 달성하려는 세계사적 유례가 드문 장도에 오른 박정희가 문명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며 예정된 어려움이었다.


이에 더해 미국과 일본의 은근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중화학공업이라는 한반도 오천 년 가난을 떨치고 세계로 웅비할 수 있는 대한민국 번영의 절대반지를 반드시 국민들에게 끼우기 위해 분투노력과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는 1917년 11월생 식민지 청년출신 박정희의 모습에서 24세의 꽃다운 나이로 1932년 독립전쟁에 나서 장렬히 순국한 동갑내기 1908년 6월생 매헌의 독립을 향한 결연한 의지와 대한민국 번영을 이끌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박정희의 일념이 생사를 초월하여 만나고 있음을 생생히 목도하면서 1908년 1월생은 시공을 건너 가슴 깊이 끓어오르는 감격과 함께 이제 대한민국의 미래에도 한줄기 서광이 비추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막장 갱도로 들어가는 광부가 탄가루가 묻은 검은 피부로 서로에게 글뤽 아우프 glück auf, 살아서 만나자고 행운을 비는 인사가 죽어서 만난 매헌의 독립을 향한 의지가 박정희의 산업화를 통한 구국의 일념과 통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독일에서 돌아온 박정희는 1차 경제개발 계획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고 1967년 제6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그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5천 년 가난을 떨치고 대한민국 번영을 이루기 위해 2차 경제개발 계획, 중화학공업으로의 거보를 한 발자국 씩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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